칼을 휘두르는 것이 예술이 됩니다. 바로 ‘검무’를 말하는데 ‘검기무(劒器舞)’ 또는 ‘칼춤’이라고도 하지요. 『동경잡기(東京雜記)』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검무의 유래가 나옵니다. 신라 소년 황창(黃昌)이 백제에 들어가 칼춤을 추다가 백제의 왕을 죽이고 자기도 죽자, 신라인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그 얼굴을 본떠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성종 때 펴낸 『악학궤범』에 나와 있지 않은 점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는 성행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 뒤 숙종 때 김만중(金萬重)이 쓴 <관황창무( 觀黃昌舞)>라는 칠언고시에 따르면 기녀들이 가면 없이 추었습니다. 경술국치 이후 관기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민간사회로 나온 기녀들이 계속 검무를 추었지만, 일부 지방에서만 그 명맥이 이어졌습니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비교적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진주검무(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가 유일합니다. 또 지방문화재인 평양검무(이북5도 무형문화재 제1호)가 있으며, 통영검무는 북춤과 함께 승전무(중요무형문화재 제21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밖에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한 것으로 해주검무와 서울경기 지방에서 전해지던 재인청검무도 있습니다. 전립(戰笠)을 쓰고 전복(戰服)이나 쾌자(掛子·快子)를 입고 남색 전대(戰帶)를 맨 채 검무를 추는 공연을 보고 싶습니다.
전립(戰笠) 조선시대 군인들이 쓰던 벙거지
전복(戰服) 조선시대 무복의 하나로 겉옷 위에 덧입는 소매없는 옷
쾌자(掛子·快子) 소매가 없고 긴 군복
전대(戰帶) 허리띠의 하나
'사진이 있는 이야기 >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노 대신 풍류와 해학으로 역신을 쫓는 처용무 (0) | 2021.09.10 |
---|---|
26편의 향악이 담긴 『시용향악보』 (0) | 2021.09.09 |
종 하나를 나무틀에 매단 특종 (0) | 2021.09.06 |
단소와의 병조가 아름다운 국악기 양금 (0) | 2021.09.05 |
<농부가>를 부르며 혹독한 삶을 이겨낸 농부들 (0) | 2021.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