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고얀 환쟁이를 봤나. 그림을 내놓지 않으면 네놈을 끌고 가 주리를 틀 것이야.”
“낯짝에 똥을 뿌릴까보다. 너 같은 놈이 이 최북을 저버리느니 차라리 내 눈이 나를 저버리는 것이 낫겠다.”
최북이 침을 퇴퇴 뱉고는 필통에서 송곳을 들고 나왔다. 그러고는 양반 앞에서 송곳으로 눈 하나를 팍 찌르는 것이 아닌가. 금세 눈에서는 피가 뻗쳤다. 비로소 그가 놀라 말에 오르지도 못한 채 줄행랑을 쳤다.
민병삼 장편소설 『칠칠 최북』에 나오는 대목인데 최북이 왜 애꾸가 되었는지를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은 탁월한 그림으로 양반과 세상에 맞섰던 천재화가 최북이 태어난 지 30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를 기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북 탄신 300주년 기념전시’를 열었지요. 최북이 그린 산수화와 화조영모화(꽃·새·짐승을 그린 그림), 인물화 23점을 소개하여 그가 왜 ‘최산수(崔山水)’, ‘최메추라기’라고 불렸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호응박토도(豪鷹博兎圖)>는 매의 부라린 눈, 붉은 혀가 도망가는 토끼를 당장이라도 낚아챌 것만 같은 긴장감이 넘치는 뛰어난 작품입니다. 이는 어쩌면 백성을 먹잇감으로 생각하고 달려드는 양반의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닐는지요.
자신의 귀를 자른 서양화가 고흐는 알아도 자신의 눈을 찌른 한국의 천재화가 최북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국인이라면 “천하 명인 최북은 마땅히 천하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라고 외치면서 몸을 날려 못으로 뛰어 들었던 자존심의 화가 최북 그림을 한번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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