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전형필이라면 광복 뒤에는 윤장섭
우리는 일제강점기 온 재산을 털어서 나라 밖으로 팔려나가는 문화재를 수집한 간송 전형필을 압니다. 그는 문화재를 지키는 것으로 또 다른 독립운동을 했지요.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전형필이 있다면 광복 뒤에는 윤장섭이 있습니다. 윤장섭은 개성 출신으로 6.25전쟁 이후 쏟아져 나온 많은 문화재가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사명감과 열정을 가지고 우리의 문화재를 수집·보존하기 시작합니다. 그 뒤에는 당시 미술사학계의 3대 대가인 최순우, 황수영, 진홍섭 같은 개성 선배들이 있었지요.
1974년 1월 국립중앙박물관장 최순우에게 편지 한 장과 도자기 몇 점이 배달되었습니다. “품평 앙망하나이다. ① 백자상감모란문병 200만 원 ② 분청사기철화엽문병 250만 원 ③ 자라병(높은 값을 부르는데 혹 모조품은 아니지요).” 최순우는 그 편지 위에 바로 답장을 써 보냅니다. “②번은 값을 조금 조절하더라도 놓치지 마십시오. 나머지는 별것 아닙니다.” 귀찮다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꼼꼼히 따져 조언을 준 덕분에 실수 없이 윤장섭은 문화재를 사들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문화재를 수집하던 윤장섭은 1981년 7월 성보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이어서 40여 년간 수집한 문화재 중 835점을 출연하여 1982년 10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호림미술관을 개관했지요. 조상의 얼이 담긴 문화재를 모든 국민이 다함께 보고 감상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후 1986년 1월 호림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까지 어어지고 있습니다.
호림박물관은 토기(3,000여 점), 도자기(4,000여 점), 그림과 책류(2,000여 점), 금속공예품(600여 점) 등 약 1만 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54점의 유물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요. 현재 간송미술관, 호암미술관과 함께 3대 사설박물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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