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스승 세종, 끊임없이 질문을 하다
병진년에 최해산(崔海山)이 도안무사(都安撫使)가 되었을 때, 치보(馳報)하기를, “정의현(㫌義縣)에서 다섯 마리의 용(龍)이 한꺼번에 승천하였는데, 한 마리의 용이 도로 수풀 사이에 떨어져 오랫동안 빙빙 돌다가 뒤에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세종실록』 22년(1440년) 1월 30일 기록입니다. 이에 세종은 “용의 크고 작음과 모양과 빛깔과 다섯 마리 용의 형체를 분명히 살펴보았는가? 또 그 용의 전체를 보았는가, 그 머리나 꼬리를 보았는가, 다만 그 허리만을 보았는가? 용이 승천할 때 운기(雲氣)와 천둥과 번개가 있었는가? 용이 처음에 뛰쳐나온 곳이 물속인가, 수풀 사이인가, 들판인가?”라며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세종의 이런 탐구력은 조선의 과학을 당대 최고로 끌어올렸고, 그러한 과학을 바탕으로 훈민정음 창제까지 이루어낸 것이지요. 세종대왕을 우리는 겨레의 가장 큰 스승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세종대왕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했을 것입니다. 요즘 학교 교육에서는 질문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오로지 시험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공부만 해야 하니 교사도 질문하지 않고 학생들의 탐구정신도 사라진 것이지요. 오늘날 세종의 탐구정신이 다시 살아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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