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비 오는 가을밤에 – 최치원, 「추야우중」

튼씩이 2022. 1. 28. 08:00

비 오는 가을밤에 – 최치원, 「추야우중」

 

 

가을바람 쓸쓸하고 애처로운데           秋風惟苦吟

세상에는 알아줄 이 별반 없구나        擧世少知音

창밖에 밤은 깊고 비는 오는데            窓外三更雨

등잔불만 고요히 비추어 주네             燈前萬里心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에 뛰어난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한시 추야우중(秋夜雨中, 비 오는 가을밤에)입니다. 6두품 집안 출신이었던 최치원은 신라에서는 아무리 뛰어나도 6두품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86812세의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납니다. 당나라에 간 최치원은 졸음을 쫓기 위해 상투를 매달고 가시로 살을 찌르며, 남이 백을 하는 동안 나는 천의 노력을 했다라는 기록을 남길 만큼 열심히 공부했지요. 그 결과 빈공과(賓貢科)에 장원으로 합격했습니다. 이후 최치원은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그 유명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써서 능력을 인정받고 황제에게서 정5품 이상에게 하사하는 붉은 주머니, 즉 자금어대(紫金魚袋)를 받기에 이릅니다. 그 뒤 17년 동안의 당나라 생활을 접고 고국 신라로 돌아오지요.

 

최치원은 이후 신라 개혁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중앙 귀족들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고 은둔하게 됩니다. 그리고 경주의 남산, 강주(오늘날의 진주), 합천의 청량사, 지리산 쌍계사, 동래의 해운대 등에 발자취를 남기고 신선이 되었다고 하지요. 가을바람 쓸쓸하게 불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은둔한 최치원이 곱씹었을 아픔이 전해오는 듯합니다.

 

 

빈공과      중국 당나라 때 외국인에게 보게 하던 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