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대자리에서 방구부채를 부치다 – 기대승, 「하경」

튼씩이 2022. 1. 26. 12:52

대자리에서 방구부채를 부치다 – 기대승, 「하경」

 

 

대 평상에 자리 깔고 편한 대로 누웠더니         蒲席筠床隨意臥

쳐놓은 발 사이로 실바람이 솔솔 불어              虛鈴疎箔度微風

방구부채 살살 흔드니 바람 더욱 시원해          團圓更有生凉手

푹푹 찌는 더위도 오늘 밤엔 사라지네               頓覺炎蒸一夜空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하경(夏景, 여름날 정경)입니다. 옛 선비들의 여름나기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에어컨 바람과 함께, 또는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여름나기를 하지만 고봉은 그저 평상에 왕골대자리를 깔고 방구부채를 부칠 뿐입니다.

 

기대승은 어려서부터 독학하여 고전에 능통했습니다. 나이가 26세나 위인 퇴계 이황과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8년 동안이나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후세 유학자들 가운데 이를 말하지 않은 이가 없었지요. 이황이 선조에게 기대승은 널리 알고 조예가 깊어 그와 같은 사람은 보기 드무니 이 사람을 통유(通儒)라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여름에는 대자리 위에서 부채를 부치면서 책을 읽는 여름나기로 고봉 기대승의 흉내를 내보면 어떨까요?

 

 

방구부채      부채살에 비단 또는 종이를 붙여 만든 둥근 모양 부채.

 

통유             세상사에 통달하고 실행력이 있는 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