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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鄭澈)ㆍ박인로(朴仁老)와 함께 조선시대 삼대가인(三大歌人)이며,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의 지은이로 유명한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를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고산은 병자호란 때 임금이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는 세상을 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제주도로 가다가, 보길도의 자연경관에 감동하여 이곳에 13년 동안 머물게 됩니다. 그는 여기서 마음을 닦으며 글을 썼는데 이곳은 지금 명승 제34호 “보길도 윤선도 원림 (甫吉島 尹善道 園林)”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보길도는 섬 안의 바위와 산봉우리에 고산이 붙인 이름이 아직도 남아 있을 정도로 고산의 보길도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곳입니다. 그는 보길도에 들어가 물이 흐르는 계곡이 피어나는 연꽃을 닮았다고 하여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 짓고, 낙서재(樂書齋)를 지어 살았습니다. 또 낙서재 건너 개울가에 연못을 파고 집을 세워 곡수당(曲水堂)이라 하고, 계곡의 동북쪽에는 '주변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 지는 곳'이란 뜻의 ‘세연정(洗然亭)’을 지어 책을 읽고 자연을 벗 삼아 지냈지요.
아마도 이렇게 뛰어난 경관 속에서 살았기에 그는 〈어부사시사〉라는 걸출한 작품을 쓸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고산은 “노비일지라도 일한 만큼 반드시 품삯을 계산해서 주어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라.” 따위의 금과옥조 같은 <충헌공 가훈>을 내려주어 후손들이 명문가로서 살아가도록 한 선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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