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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홍언필이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올 때였습니다. 하인들이 "물렀거라! 영의정 대감 행차시다."라고 외쳤습니다. 이에 깜짝 놀란 홍언필이 손사래를 치면서 "조용히 하거라."고 말합니다. 높은 벼슬아치가 초헌(조선시대 종2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탄 수레로 외바퀴이며, 지붕은 없다)이나 보교(조선시대에 벼슬아치들이 탄 가마로 사면으로 휘장을 둘렀고, 지붕이 있다)를 타고 행차할 때는 으레 종들이 "썩 물렀거라." 같은 "벽제소리"를 외치는 것인데 홍언필은 이를 못하게 한 것입니다.
홍언필(1476 ~ 1549)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대사헌을 6번이나 지냈고,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던 명신입니다. 이렇게 홍언필은 영의정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이었지만 늘 겸손하고 조심하며, 처세에 허물이 없도록 조심을 다했습니다. 이런 홍언필을 두고 소심한 사람으로 비판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런 것이 공직자의 표본이 아닐까요?
이 홍언필에 환갑잔치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영의정에 올랐고, 그의 아들들도 판서에 오른 자랑스러운 집안이어서 집안사람들은 크게 잔치를 치릅니다. 광대를 불러 곱사춤을 추게 하고, 기생을 불러 노래를 시키는 등 걸판지게 잔치를 엽니다. 그러나 이에 홍언필은 마음이 무겁습니다. “내가 외람되이 한 나라의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해서 늘 마음속으로 경계하고 삼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수십 명의 기생을 불러 어지럽고 질탕하게 노니 나는 오히려 편치 않다.”라고 하여 광대와 기생들을 물러나게 했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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