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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風惟苦吟 가을바람 쓸쓸하고 애처로운데 擧世少知音 세상에는 알아줄 이 별반 없구나 窓外三更雨 창밖에 밤은 깊고 비는 오는데 燈前萬里心 등잔불만 고요히 비추어 주네
위는 신라시대 뛰어난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 한시 “비오는 가을밤에[秋夜雨中]”입니다. 6두품 집안 출신이었던 최치원은 신라에서는 아무리 뛰어나도 6두품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868년 열두 살의 나이로 당나라로 유학을 떠납니다. 당나라에 간 최치원은 “졸음을 쫓기 위해 상투를 매달고 가시로 살을 찌르며, 남이 백을 하는 동안 나는 천의 노력을 했다.”라는 기록을 남길 만큼 열심히 공부했지요. 드디어 최치원은 빈공과 장원으로 합격했습니다.
이후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그 유명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써서 황소를 격퇴해 황제로부터 정5품 이상에게 하사하는 붉은 주머니 자금어대를 받음으로써 그의 능력을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그 뒤 17년 동안의 당나라 생활을 접고 고국 신라로 돌아오지요. 그리고 신라 개혁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중앙 귀족들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고 운둔을 하게 됩니다. 최치원은 이후 경주의 남산, 강주, 합천의 청량사, 지리산 쌍계사, 동래의 해운대 등에 발자취를 남기고 신선이 되었다고 하지요. 가을바람 쓸쓸하게 불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은둔한 최치원이 곱씹었을 아픈 가슴이 전해오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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