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 4

50세가 넘어서야 명주옷을 입은 윤선도

50세가 넘어서야 명주옷을 입은 윤선도 나는 나이 50이 넘어서야 명주옷이나 모시옷을 처음 입었는데, 시골 있을 때 네가 명주옷을 입은 것을 보고 몹시 불쾌했다. 대체로 이 두 종류의 옷은 대부(大夫)가 입는 옷으로서 대부들도 입지 않은 이가 많은데, 더구나 평민으로서 대부의 옷을 입어서야 되겠느냐? 이런 복식(服飾)은 모름지기 물리쳐 가까이 말고 검소한 덕을 숭상하도록 하여라. 충헌공(忠憲公)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9∼1671년)가 아들에게 내려준 가훈의 일부입니다. 50세가 넘어서야 명주옷을 입었다니 그의 성품을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윤선도는 「오우가(五友歌)」와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로 익히 잘 알려졌으며, 정철(鄭澈), 박인로(朴仁老)와 함께 조선시대 3대 가인(歌人)으로 일컫는 ..

고산 윤선도의 입양, 나라에서 허락했다

고산 윤선도의 입양, 나라에서 허락했다 조선 전기만 해도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가족제도를 이어받아 아들과 딸이 똑같이 재산을 나누는 ‘균분상속제’였으며, 제사도 아들은 물론 딸도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제도는 임진왜란 이후 급격하게 변하여 균분상속제가 무너지고 부계 중심의 가족제도로 굳어집니다. 그와 함께 입양 사례가 빠르게 늘어나는데, 이는 장자상속이 보편화된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장자상속과 그에 따른 입양사례를 가장 실감나게 엿볼 수 있는 것이 보물 제482-5호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선조 35년(1602년) 6월 초이틀에 윤유심尹唯深의 둘째아들인 선도를 윤유심의 형인 유기唯幾에게 양자로 들일 것을 예조(禮曹)에서 허가한 결재문서지요. 이를 보면 양쪽 집안의 동의서를 확인하고 ..

(얼레빗 4434호) 조선시대 여성의 독서를 증명한 그림

여기 단정한 차림새의 여인이 앉아 책을 읽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읽는지 손가락으로 글자를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읽는데 책 읽기에 완전히 몰입한 듯 진지합니다. 그러나 여성은 한 치도 흐트러짐 없는 기품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독서삼매경’이라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조선시대 여성들은 살림하기에 바쁘다거나, 여성들이 무엇하러 책을 읽느냐는 생각에 책과 가까이 하지 않았을 거라 짐작하지만 이 여인을 보면 분명히 책을 읽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 윤덕희, , 비단에 색, 20×14.3cm, 서울대학교박물관 전해지는 그림에 남성이 독서하는 것은 많지만 여성이 독서하는 그림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원은 이렇게 여성이 독서하는 그림을 남겨주어 조선시대 여인들도 독서..

12월 6일 - 송강이 사랑하던 여인 강아아씨가 떠오릅니다

이 몸이 생겨날 제 임을 좇아 생겨나니 한평생 연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 나 오직 젊어 있고 임 오직 날 사랑하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줄 데 전혀 없다 평생 원하기를 함께 지내자 하였더니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로이 두고 그리는고 엊그제 임을 모셔 광한전에 올랐더니 그 사이 어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