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무용 4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처용무) 기념우표

한국의 전통 무용 ‘처용무’는 궁중 연례에서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평온을 기원하기 위해서나 음력 섣달그믐날 악귀를 쫓는 의식인 나례(儺禮)에서 복을 구할 때 춘 춤입니다. 동해 용왕의 아들이자 사람 형상을 한 ‘처용’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천연두를 옮기는 역신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해냈다는 한국 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질병으로 지친 국민의 안녕과 회복을 기원하기 위해, 2009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처용무를 주제로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처용의 가면을 쓰고 추는 처용무는 〈삼국유사〉에 실린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의 처용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궁중무용입니다. 용의 아들인 처용이 밤늦게 귀가하다 방에 발이 4개인 것을 보게 되는데, 이 중 아내의 발을 제외..

부패한 양반과 파계승을 풍자한 한량무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 한량무(閑良舞)를 보셨나요? 진주(晉州)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교방 계통의 무용극입니다. 여기서 ‘한량’이란 양반 출신으로 노상 놀고먹는 사람을 이르는데, 한량무는 한량과 승려가 한 여인을 유혹하는 내용을 춤으로 표현한 무언무용극(無言舞踊劇)입니다. 원래 이 춤은 조선 중기 이후 남사당패 가운데 무동(舞童)이 놀았던 것으로 조선시대 말까지 계속해서 연행되었으나, 남사당패가 흩어지면서 1910년 이후 어른의 무용으로 기방에서 주로 추게 됩니다. 지역마다 한량무와 비슷한 춤들을 추었으나 이제는 거의 없어지고 진주에서만 1979년에 재연되어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고종 때 정현석(鄭顯奭)이 엮은 『교방가요(敎坊歌謠)』나 『진주의암별제지(晉州義岩別祭志)』 등에 보면 예부터 진..

분노 대신 풍류와 해학으로 역신을 쫓는 처용무

서울(오늘날 경주) 밝은 밤에 밤늦게 노니다가 /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 가랑이가 넷이도다 / 둘은 나의 것이었고 / 둘은 누구의 것인가? / 본디 내 것이지만 / 빼앗긴 것을 어찌 하리오?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지었다는 8구체 향가 입니다. 이 처용가를 바탕으로 한 궁중무용 ‘처용무(處容舞)’가 있습니다. 처용무는 원래 궁중 잔치에서 악귀를 몰아내고 평온을 빌거나 음력 섣달 그믐날 나례에서 복을 빌면서 춘 춤이었지요. 『삼국유사』의 「처용랑 망해사(處容郞 望海寺)」 조에 보면, 동해 용왕의 아들로 사람 형상을 한 처용(處容)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천연두를 옮기는 역신(疫神)에게서 인간 아내를 구해냈다는 설화가 나옵니다. 그 설화를 바탕으로 한 처용무는 동서남북과 가운데의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단소와의 병조가 아름다운 국악기 양금

국악기 가운데 양금(洋琴)은 18세기 영조 때 유럽에서 청나라를 통해 들어 온 악기입니다. ‘구라철사금(歐邏鐵絲琴)’ 또는 ‘구라철현금(歐邏鐵絃琴)’이라고도 하며, 주로 민간의 정악 연주에 쓰였습니다. 사다리꼴 상자 위에 2개의 긴 괘를 세로로 질러 고정시키고, 괘 위에 14벌의 금속 줄을 가로로 얹은 다음, 대나무를 깎아 만든 가는 채로 줄을 쳐서 맑은 금속성의 소리를 내지요. 몸통은 오동나무판으로 만들며, 줄은 주석과 철의 합금으로 만듭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양금에 대한 기록이 나오며, 이규경의 『구라철사금자보(歐邏鐵絲琴字譜)』에도 양금에 대한 소개가 실려 있습니다. 풍류 악기인 양금은 18세기부터 줄풍류와 가곡, 시조 따위의 노래 반주에 쓰였고, 궁중무용인 ‘학연화대처용무합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