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마루 6

(얼레빗 제4736호) 선비들의 즐거움, 평상에서 책 읽기

“좌탑은 네 모서리에 장식이 없고, 큰 자리를 얹어놓는다. 관사 안에 지나다니는 길 사이에 두고, 관리들이 쉴 때 썼다. 와탑은 3면으로 난간이 세워져 있으며, 비단 보료가 깔리고 큰 자리가 놓여 있다. 단지 임금과 높은 벼슬아치와 관련한 의식이 있거나, 중국 사신을 접대할 때만 사용한다.” 중국 송(宋)나라 관리로 고려 인종(仁宗) 원년(1123)에 사신으로 온 서긍(徐兢)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는 이렇게 좌탑(坐榻)과 와탑(臥榻) 곧 평상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 , 국립민속박물관 평상(平床)은 솔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고 바둑을 둘 때 또는 낮잠을 잘 때 쓰는 것으로 대청이나 누(樓)마루에 놓여 있었지요. 기다란 각목(角木)이 일정 간격으로 벌어져 있어 통풍이 잘되므로 여름철에..

궁중장식화 - 어디에 놓였을까, 침전

3) 침전 침전(寢殿)은 궐내에서 왕이 휴식, 수면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향유하는 내전(內殿) 영역으로 전조후침(前朝後寢)의 원리에 따라 정전과 편전의 후방에 배치되었다. 외부로 개방된 대청마루에서는 소규모의 연회가 이루어졌고, 대청 좌우에 위치하는 온돌방에는 칸막이 역할을 하는 장지[障子]를 설치하여 다중의 실(室)을 만들고, 그 정중앙(正中央)의 방에서 왕과 왕비가 수면을 취했다. 침전은 내전 영역이기 때문에 기물의 배설과 관련한 공식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궁궐 침전의 수리를 맡은 한 선비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실록에서 찾을 수 없었던 화려한 실내 장식을 엿볼 수 있다. 1802년 순조(純祖)는 김조순(金祖淳)의 딸 순원왕후(純元王后)를 왕비로 맞이하기 위해 창덕궁 대조전을 침전으로 수리하..

조선 궁중문화의 터전 궁궐 - 건물의 위계: 전당합각재헌루정

4. 건물의 위계: 전당합각재헌루정 궁궐에서는 위로 임금으로부터 최하층의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다양한 직무를 수행하였다. 기본적으로 그 사람들의 기거 활동 구역이 나뉘어 서로 섞이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같은 구역 안에서도 건물들은 제각각 그 주인의 신분과 직임 및 건물의 용도에 따라 위계(位階)를 달리하였고, 위계에 따라 외형이 달라졌고, 기능도 달라졌다. 이러한 각 건물의 위계와 형태, 기능은 그 이름에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 독립적인 건물에는 거의 이름을 지어 붙였는데, 이름의 앞부분은 고유명사인데 비하여 이름의 끝에는 건물임을 뜻하는 글자를 붙였다. 그 끝 글자들은 다양하지만 이를 간추려 보면 전(殿), 당(堂), 합(閤), 각(閣), 재(齋), 헌(軒), 누(樓), 정(..

평상, 조선시대에는 즐거움 현대에는 권태

평상, 조선시대에는 즐거움 현대에는 권태 고가 도로 밑, 평상에 아저씨들 몇이 앉아 있다 삼화표구, 전주식당, 영진오토바이 주인들이다 (……) 무슨 얘기 끝에 대화가 뚝 끊겼는지, 평상에 앉은 네 사람의 방향이 제각각인 채 침묵의 무릎을 세우고 있다 저 장면을 사진 찍거나 그림 그려서 ‘권태’, ‘오후’ 같은 제목을 붙이면 제격일 텐데 아저씨들 저녁이 오면 슬슬 일어나서 고기를 굽거나 화투장을 만질 것이다 정병근 시인이 쓴 「평상(平床)」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평상은 나무 또는 대나무를 써서 그 위에 사람이 앉거나 누울 수 있도록 만든 네모난 대(臺)입니다. 평상의 길이와 너비는 대개 2:1의 비율이지요. 평상의 가에 난간이 있기도 하는데 물건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느끼게 합..

(얼레빗 4453호) 우리 겨레 슬기로운 삶의 결정체 ‘마당’

우리 겨레는 한옥이란 주거공간에서 오랫동안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한옥은 앞에 마당, 뒤뜰엔 꽃밭이나 푸성귀밭(채소밭)을 두었지요. 또 마당에는 잔디를 깔거나 꽃, 나무들을 심지 않고 빈 채 놓아둡니다. 시골에 있는 오두막집이라도 이 마당은 으레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마당을 빈 채 놓아둔 까닭이 무엇일까요? ▲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한옥의 앞마당 그렇게 구조를 만든 가장 큰 까닭은 바로 자연을 활용한 과학적 삶의 슬기로움입니다. 마당을 비워두면 여름에 햇볕에 달궈져 뜨거운 공기가 만들어져 위로 올라갑니다. 이때 마당과 꽃과 나무가 있는 뒤뜰 사이엔 기압차가 생겨 바람이 불게 되지요. 그 바람은 대청마루를 빠르게 통과함으로써 시원하게 여름을 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지요. 빈터로 된 마당은 ..

7월 21일 - 여름의 낭만은 역시 시원한 발이지요

<삼국사기> 10권 <신라본기>를 보면 “여름 4월에 폭풍이 불어 나무를 부러뜨리고 기와를 날렸다. 서난전(瑞蘭殿)의 발이 날려간 곳을 모르며, 임해문(臨海門)과 인화문(仁化門) 두 문이 무너졌다”라는 기록이 보여 이미 신라 때에도 발은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태종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