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 조선시대에는 즐거움 현대에는 권태
고가 도로 밑, 평상에 아저씨들 몇이 앉아 있다
삼화표구, 전주식당, 영진오토바이 주인들이다
(……)
무슨 얘기 끝에 대화가 뚝 끊겼는지,
평상에 앉은 네 사람의 방향이 제각각인 채 침묵의 무릎을 세우고 있다
저 장면을 사진 찍거나 그림 그려서 ‘권태’, ‘오후’ 같은 제목을 붙이면 제격일 텐데
아저씨들 저녁이 오면 슬슬 일어나서 고기를 굽거나 화투장을 만질 것이다
정병근 시인이 쓴 「평상(平床)」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평상은 나무 또는 대나무를 써서 그 위에 사람이 앉거나 누울 수 있도록 만든 네모난 대(臺)입니다. 평상의 길이와 너비는 대개 2:1의 비율이지요. 평상의 가에 난간이 있기도 하는데 물건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느끼게 합니다. 주로 대청마루나 누마루 또는 나무 아래에 평상을 놓고, 이 위에서 쉬거나 글을 읽거나 손님과 더불어 차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조선 후기 선비 화가 윤두서가 그린 <수하오수도樹下午睡圖>에는 여름철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평상을 놓고 낮잠을 즐기는 사람이 보입니다. 또 단원檀圓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에도 사랑채 대청마루에 평상을 놓고, 그 위에 사람이 누워 있는 장면이 있지요. 이런 그림들을 보면 조선시대 선비는 게으른 모습을 경계하지만, 평상의 즐거움은 은근히 누렸던 모양입니다. 한편 덕흥리 고분, 약수리 무덤, 쌍영총 등에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모두 평상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미 고구려 때부터 우리 조상들은 평상을 즐겼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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