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10권 <신라본기>를 보면 “여름 4월에 폭풍이 불어 나무를 부러뜨리고 기와를 날렸다. 서난전(瑞蘭殿)의 발이 날려간 곳을 모르며, 임해문(臨海門)과 인화문(仁化門) 두 문이 무너졌다”라는 기록이 보여 이미 신라 때에도 발은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태종실록>에는 “궁중에 모두 갈대발(葦簾, 위렴)을 쓰고 또 선 두르는 것을 없애라고 명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새 대궐의 발을 베(布)를 써서 선을 꾸몄으므로 임금이 노하여 이러한 명령이 있었다”라는 기록도 나옵니다. 이어서 <숙종실록>에는 “동양옹주(東陽翁主)의 집이 얕아서 이웃집에서 보이는 곳이 있었으므로, 옹주가 그 집을 사기를 청하자, 선묘께서 특별히 갈대발을 내려주어서 가리도록 하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를 보면 조선시대 많은 임금이 검소한 자세로 지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름철 한옥에는 꼭 발을 걸어두었습니다. 발은 직접 들어오는 햇볕을 가리기도 하고 안쪽 풍경을 가리기도 했으며 문을 활짝 열어둘 때보다 발을 침으로써 시원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요. 발의 재료로는 대나무를 곱게 갈라 만든 대발, 갈대로 엮은 갈대발, 삼베로 만든 삼베발 따위가 문헌에 보입니다. 살랑거리며 흔들리는 발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운치가 있습니다. 발이 걸린 대청마루에서 나물 먹고 물 마시고 목침을 베고 누워 솔바람소리를 듣는다면 이거야말로 품위 있는 여름나기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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