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15

(얼레빗 제5044호) 처용, 역신을 해학으로 쫓아내

“서울(지금의 경주) 밝은 밤에 밤늦게 노니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도다. 둘은 나의 것이었고,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이 노래는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지었다는 8구체 향가 “처용가"입니다. 또 《삼국유사》의 조에 보면 동해 용왕(龍王)의 아들로 사람 형상을 한 처용(處容)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천연두를 옮기는 역신(疫神)으로부터 인간 아내를 구해냈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그 설화를 바탕으로 한 처용무는 동서남북 그리고 가운데의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흰색ㆍ파랑ㆍ검정ㆍ빨강ㆍ노랑의 옷을 입은 5명의 남자가 춤을 춥니다. 처용무의 특징은 자기 아내를 범하려는 역신을 분노가 아닌 풍류와 해학으로 쫓아낸다는 데 있습니다. 춤의 내용은 음양오행설의 ..

우리 토박이말의 속살 3 – ‘고맙다’

'고맙다'라는 말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귀가 아프지 않고 늘 반가운 낱말 가운데 첫손 꼽힐 것이다. 그런데 일제 침략 뒤로 일본 한자 말 '감사하다'에 짓밟히고, 광복 뒤로 미국말 '땡큐'에 밀려서 안방을 빼앗기고 내쫓겨 요즘은 목숨마저 간당간당하다. 우리말을 아끼고 가꾸려는 뜻을 굳게 세우고 생각의 끈을 단단히 다잡는 사람이 아니면 입에서 '감사하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새로운 세상에 남보다 앞장서려는 사람들 입에서는 '땡큐' 소리까지 보란 듯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고맙다'는 '곰'에서 말미암았다. 단군 이야기에 단군을 낳으신 어머니로 나오는 '곰',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며 백일기도를 드리고 마침내 사람으로 탈바꿈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신 환웅의 아내가 되어 단군을 낳았다는 바로 그 '..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처용무) 기념우표

한국의 전통 무용 ‘처용무’는 궁중 연례에서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평온을 기원하기 위해서나 음력 섣달그믐날 악귀를 쫓는 의식인 나례(儺禮)에서 복을 구할 때 춘 춤입니다. 동해 용왕의 아들이자 사람 형상을 한 ‘처용’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천연두를 옮기는 역신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해냈다는 한국 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질병으로 지친 국민의 안녕과 회복을 기원하기 위해, 2009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처용무를 주제로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처용의 가면을 쓰고 추는 처용무는 〈삼국유사〉에 실린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의 처용설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궁중무용입니다. 용의 아들인 처용이 밤늦게 귀가하다 방에 발이 4개인 것을 보게 되는데, 이 중 아내의 발을 제외..

(얼레빗 제4716호) 아들을 간절히 원했던 마음의 기자신앙

예부터 전해오던 풍속으로 “기자신앙(祈子信仰)”이란 것이 있습니다. 기자신앙은 자식이 없는 특히 아들이 없는 부녀자가 아들을 낳으려고 비손하는 민간신앙의 한 가지입니다. 아들을 중요하게 여겨 씨받이까지 들여 대를 잇고자 했던 사회의 조선시대는 기자신앙이 더욱 발달했지요. 그런데 기자행위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시조탄생 신화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오랜 옛날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단군신화》에서 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늘 신단수 아래에 가서 아이를 잉태하고자 빌었다고 하지요. 이런 기자신앙은 신단수, 용왕당, 삼신당, 미륵보살에 빌기도 했지만, 특히 남근(男根)을 닮은 기자석이 인기 있었습니다. 남자의 성기를 닮은 남근석은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신비한 힘을 소유..

재미있는 우리 속담 - 소뿔도 각각 염주도 몫몫

속담俗談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구술 전승 문화의 하나이기에, 구전 이야기나 민요, 판소리, 민속 등과의 상호 교섭이 활발한 편입니다. 이야기나 민요, 판소리 등에 속담이 끼어 들어간 예도 많고 이야기나 민요 사설에서 속담이 만들어진 예도 많지요. 특히 여성들이 즐겨 부르는 민요에 재미난 속담이 들어간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달에 살펴본 “시아버지 죽으라고 축수했더니 동지섣달 맨발 벗고 물 길을 때 생각난다”라는 속담과 “시어머니 죽으라고 축수했더니 보리방아 물 부어 놓고 생각난다”라는 속담이 생각나시는지요? 이들 속담은 경북 지역에서 전승되는 여성 민요에 유래를 둔 옛말입니다. 영덕 지방에서 전승되는 아라리조의 민요 사설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시아버님 죽으라꼬 축수를 했디 포도자리 떨어지..

(얼레빗 4704호) 높이 80m의 거대한 ‘황룡사구층목탑’

“자장법사가 중국으로 유학해 ‘대화지’라는 연못을 지나는데 갑자기 신인(神人)이 나와서 신라가 처한 어려움을 물었고, 이에 자장이 ‘신라는 북으로 말갈에 잇닿았고, 남으로는 왜국에 이어졌으며,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가 번갈아 국경을 침해 큰 우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신인은 신라가 여자를 임금으로 삼아 덕은 있어도 위엄이 없으므로 이웃 나라에서 침략을 도모하는 것이니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라 했다. 자장은 이에 ‘내가 귀국한들 무슨 유익한 일이 있습니까?’라고 되묻자 신인은 황룡사의 호법룡(護法龍)이 바로 자신의 큰아들이므로 황룡사에 구층탑을 세우면 주변 아홉 나라가 복종하며, 왕실이 영원히 편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위는 《삼국유사》에 있는 ‘황룡사구층목탑’을 세우게 된 연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얼레빗 4699호) 섣달그믐 세시풍속, 양괭이귀신 물리치기

오늘은 까치설날입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스님과 내통하여 임금을 해치려 하였는데 까치(까마귀)와 쥐, 돼지와 용의 인도로 이를 모면하였습니다. 그런데 쥐, 돼지, 용은 모두 ‘12지’에 드는 동물이라 기리는 날이 있지만, 까치를 기릴 날이 없어 설 바로 전날을 까치를 기리려고 까치설이라 했다고 하지요. 그런가 하면 옛날 섣달그믐을 작은설이라 하여 “아치설” 또는 “아찬설”이라 했는데 이 “아치”가 경기지방에서“까치”로 바뀌었다고도 합니다. 음력 22일 조금을 다도해 지방에서는 “아치조금”이라 하지만 경기만 지방에서는 “까치조금”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그믐 전날, 어린이 수십 명을 모아서 붉은 옷과 두건을 씌워 궁중에 들여보내면 그믐날 새벽에 관상감..

기자신앙, 아들을 낳게 해주세요

기자신앙, 아들을 낳게 해주세요 예부터 전해오던 풍속으로 ‘기자신앙(祈子信仰)’이 있습니다. 자식, 특히 아들이 없는 부녀자가 아들을 낳으려고 신에게 비는 민간신앙의 하나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아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환경 때문에 기자신앙이 더욱 발달했지요. 그런데 기자 행위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시조탄생신화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오랜 옛날부터 있었습니다. 단군신화에서도 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자 늘 신단수 아래에 가서 아이를 잉태하려고 빌었지요. 이럴 때 신단수, 용왕당, 삼신당, 미륵보살에 빌기도 했지만 특히 남자의 성기를 닮은 남근석(男根石)이 인기 있었습니다. 옛사람들은 남근석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신비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원초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지요. 이런 믿음은 지..

분노 대신 풍류와 해학으로 역신을 쫓는 처용무

서울(오늘날 경주) 밝은 밤에 밤늦게 노니다가 /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 가랑이가 넷이도다 / 둘은 나의 것이었고 / 둘은 누구의 것인가? / 본디 내 것이지만 / 빼앗긴 것을 어찌 하리오?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지었다는 8구체 향가 입니다. 이 처용가를 바탕으로 한 궁중무용 ‘처용무(處容舞)’가 있습니다. 처용무는 원래 궁중 잔치에서 악귀를 몰아내고 평온을 빌거나 음력 섣달 그믐날 나례에서 복을 빌면서 춘 춤이었지요. 『삼국유사』의 「처용랑 망해사(處容郞 望海寺)」 조에 보면, 동해 용왕의 아들로 사람 형상을 한 처용(處容)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천연두를 옮기는 역신(疫神)에게서 인간 아내를 구해냈다는 설화가 나옵니다. 그 설화를 바탕으로 한 처용무는 동서남북과 가운데의 오방(五方)을 상징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