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5

(얼레빗 제4722호) 사팔뜨기 채제공, 임금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아

정조 개혁의 중심에 섰던 인물 번암 채제공의 초상을 보면 살짝곰보와 사팔뜨기 눈까지 숨기지 않고 그려 그가 못생긴 인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거의 “죽기살기”라고 할 만큼 정확하게 그리는 조선시대 초상화 사실주의의 극치 덕분입니다. 번암은 그렇게 못생겼지만 28살에 사관인 예문관 한림(翰林) 시험에 수석을 차지한 뒤 죽기 한 해 전인 77살 때까지 은거한 7년을 빼고는 이조좌랑, 사헌부 지평, 한성판윤 등을 거쳐 영의정까지 오른 정말 큰 인물입니다. ▲ 살짝곰보와 사팔뜨기 눈까지 그대로 그린 채제공 초상, 65살 때(왼쪽)/73살 때 그런데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신임을 얻고 크게 탄핵을 받지 않은 까닭은 대부분 벼슬아치처럼 아부를 잘하거나 뇌물 공세 덕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청백리에 꼽힐 만큼 ..

누에 치는 아낙은 비단옷 입지 못하니 – 이산해, 「잠부」

누에 치는 아낙은 비단옷 입지 못하니 – 이산해, 「잠부」 누에를 친들 무슨 이익 있으랴 養蠶有何利 자기 몸엔 비단옷 입지 못하니 不見身上衣 가엾어라 저 이웃집 아낙은 堪憐隣舍女 날마다 뽕잎 따서 돌아오는구나 日日摘桑歸 조선 선조 대에 영의정을 지낸 문신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쓴 「잠부(蠶婦)」 곧 ‘누에 치는 아낙’이라는 제목의 한시입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누에 치는 법을 가르친 서릉씨(西陵氏)에게 제사를 지내고, 제사 뒤에는 왕비가 직접 뽕잎을 따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국가의례를 ‘선잠제(先蠶祭)’ 또는 ‘친잠례(親蠶禮)’라 불렀지요. 그만큼 누에를 쳐서 실을 뽑고 옷감(비단)을 짜는 일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옷감을 짜는 여성들은 정작 비단옷..

이조판서 오윤겸,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울다

이조판서 오윤겸,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울다 조선 중기, 하루는 정사를 마치고 인조 임금과 신하들 사이에 술자리가 벌어졌습니다. 이때 문신 오윤겸(吳允謙, 1559∼1636년)이 매우 취하여 임금 앞에 엎드려 울었지요. 이에 임금이 무슨 까닭인지 묻자 “나라가 망하려고 해서 웁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재차 임금이 왜 나라가 망하느냐고 물었고, 오윤겸은 “신이 사사로이 아는 사람을 처음 벼슬하는 사람으로 추천하였는데, 전하께서 누구냐고 물으셨을 때 사사로운 관계라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낙점하셨습니다. 이에 전하께서 신과의 인연에 구애되어 바른 도리로 신하를 꾸짖지 않으신 것입니다”라고 말했지요. 오윤겸은 벼슬자리를 사사로이 줄 수가 없는데도 물욕에 눈이 어두워 임금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며 울었..

임금도 함부로 부르지 못한 신하, 불소지신

임금도 함부로 부르지 못한 신하, 불소지신 조선시대 세자는 나중에 임금이 되기 위한 영재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세자를 가르치기 위한 별도의 기관을 두었지요. 태조 때에는 그저 ‘세자관속(世子官屬)’이라 하여 관리만 두었는데, 세조 때 드디어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을 설립했습니다. 유학 교육을 통해서 미래의 임금인 세자가 임금으로서 갖추어야 할 학문적 지식과 도덕적 자질을 기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지요. 이때 세자를 가르치는 시강관은 모두 당대의 실력자가 임명되었습니다. 세자의 스승은 가장 고위직인 영의정과 좌·우의정이 맡았지요. 하지만 이들은 나랏일로 바빴기 때문에 실제로 세자를 가르치는 사람은 빈객(賓客) 이하 전임관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문과 출신 30~40대 참상관(參上官, 정3품에서 ..

12월 11일 -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날을 기억합니다

"임금이 면복(冕服)을 갖추고 환구단(圜丘壇)에 올라 제사를 지내기를 의식대로 하였다. 호천 상제위(昊天上帝位)·황지기위(皇地祇位) 및 태조위(太祖位)에는 임금이 친히 삼헌(三獻)을 행하고, 대명위(大明位) 및 풍운뢰우위(風雲雷雨位)에는 세자(世子)가 삼헌(三獻)을 행하고, 야명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