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 치는 아낙은 비단옷 입지 못하니 – 이산해, 「잠부」
누에를 친들 무슨 이익 있으랴 養蠶有何利
자기 몸엔 비단옷 입지 못하니 不見身上衣
가엾어라 저 이웃집 아낙은 堪憐隣舍女
날마다 뽕잎 따서 돌아오는구나 日日摘桑歸
조선 선조 대에 영의정을 지낸 문신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쓴 「잠부(蠶婦)」 곧 ‘누에 치는 아낙’이라는 제목의 한시입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누에 치는 법을 가르친 서릉씨(西陵氏)에게 제사를 지내고, 제사 뒤에는 왕비가 직접 뽕잎을 따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국가의례를 ‘선잠제(先蠶祭)’ 또는 ‘친잠례(親蠶禮)’라 불렀지요. 그만큼 누에를 쳐서 실을 뽑고 옷감(비단)을 짜는 일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옷감을 짜는 여성들은 정작 비단옷을 입지 못했지요. 이산해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끊임없이 뽕잎을 따고 누에를 치는 아낙의 눈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지은이를 모르는 또 다른 「누에 치는 아낙」이라는 한시도 역시 같은 정서를 노래합니다.
어제는 고을에 갔었는데 昨日到城郭
돌아올 적엔 눈물 흠뻑 흘렸네 歸來淚滿巾
온 몸에 비단을 감고 있는 사람은 遍身綺羅者
아무도 누에 치는 사람들이 아니었네 不是養蠶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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