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 7

(얼레빗 제4766호) 발신자ㆍ수신자 모르는 조선시대 청탁 편지

전경목이 쓰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가 펴낸 《옛 편지로 읽은 조선사람의 감정》에는 발신자와 수신자를 알 수 없는 편지 한 장이 있습니다. 원래 편지란 발신자와 수신자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글이지만, 이 편지의 끝에 보면 ‘누제(纍弟)가 이름을 쓰지 않은 체 머리를 조아려 아룁니다.’라고 썼습니다. ‘누제(纍弟)’는 귀양살이하는 사람이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 죄인이기에 자신의 성이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입니다. ▲ 한 유배자가 지인에게 보낸 간찰, 갑자년 12월 1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제공) 또 편지의 내용을 보면 귀양살이하는 사람이 지인에게 관찰사의 농락으로 유배지를 급하게 옮기게 되었다며, 하룻길을 갈 노비와 말을 빌려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죄수가 교도소에 있을 때나 이감하는..

일본의 사도섬 세계문화유산 등록은 후안무치의 극치

일본 니가타현에 속하는 사도섬(新潟県 佐渡島)을 알게 된 것은 모리 오가이(森鷗外)의 소설인 《산쇼다유(山椒大夫)》를 통해서다. 《산쇼다유》는 헤이안시대(794~1185) 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사회 혼란기를 틈타 인신매매로 가족이 흩어지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은 미조구치 겐지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인기리에 방영되는 바람에 근대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사도섬(佐渡島)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근대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는 했지만 사도는 그 옛날, 발해국 사신들이 이곳을 통해 일본에 건너온 기록 등 우리와도 관련이 깊은 땅이다. ▲ 교토 단바망간 탄광에서 강제노역을 하던 조선인들 《속일본기(續日本紀)》 권제18, 천평승보 4년(752년)조에 “발해사보..

청백리 인정받자 사양한 조사수

청백리 인정받자 사양한 조사수 소신은 천성이 본래 잔약하고 어리석어서 남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남들이 혹시 주는 것이 있으면 받아서 먹기도 하였으니 청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전하께서 너그러이 용납하시어 탐관오리를 면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데 사실과 달리 넘치는 이름을 얻고 보니, 이는 신이 하늘을 속이는 죄를 받을 뿐만 아니라 깨끗한 정사(政事)를 지향하는 전하께도 혹 누가 될는지 두려우며 몸 둘 바를 몰라 저도 모르게 이마에 땀이 맺히고 등에도 땀이 흐릅니다. 청백리의 이름을 지워주소서. 이는 유배지나 다름없는 제주목사가 되어 갔다가 제주의 문제점을 소상히 적어 올린 뒤 제주도 방어문제로 노심초사하던 임금에게서 청백리로 인정받은 송강(松岡) 조사수(趙士秀, 1502∼1558년)가 한 말입니다. 이..

산수갑산은 어디일까?

힘든 일이지만 꼭 해내겠다는 의지를 밝힐 때, “산수갑산에 가는 한이 있어도”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이 ‘산수갑산’은 어디일까? 속담의 의미상 누구나 가기 싫어하는 험한 곳인 것만은 분명하다. 마치 ‘지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산수’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어찌된 일일까? 사실 ‘산수갑산’은 ‘삼수갑산’을 잘못 쓰고 있는 것이다. 산과 물의 경치를 뜻하는 ‘산수’란 말에 익숙해서, 또는 ‘산수’와 ‘삼수’의 발음을 혼동하여 흔히들 ‘산수갑산’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이 속담은 경치 좋은 곳에 간다는 뜻이 아니라, ‘험한 곳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니, ‘삼수’는 아주 험한 곳이어야 한다...

(얼레빗 4608호) 머리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게 ‘살쩍밀이’

“날마다 일찍 일어나 이부자리를 네 손으로 개어 깨끗한 곳에 두어라. 이어 비를 가지고 자리를 깨끗하게 쓸고 머리는 얼레빗으로 빗고, 빗을 빗통에 넣어 두어라. 이따금 거울을 보며 눈썹과 살쩍을 족집게로 뽑고 빗에 묻은 때를 씻어 깨끗하게 해라. 세수하고 양치하며 다시 이마와 살쩍을 빗질로 매만지고, 빗통을 정리하고 세수한 수건은 늘 제자리에 두어라.” 윗글은 안평대군, 한석봉, 김정희와 더불어 조선 4대 명필의 하나인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유배지에서 딸에게 절절히 쓴 편지 일부입니다. 자신은 유배를 떠나고 아내는 목을 매 죽어 부모 없이 홀로 남은 딸에게 이광사는 사랑을 담아 편지로 가르침을 주었지요. 여기에 두 번이나 나오는 살쩍은 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머리털을 말합니다. 그런데 ..

(얼레빗 4230호) 유배지의 이항복, 고향생각에 잠 못 이뤄

終宵默坐算歸程(종소묵좌산귀정) 말없이 밤새 앉아 돌아갈 길 헤아리니 曉月窺人入戶明(효월규인입호명) 새벽달이 문에 들어와 밝으니 날 엿보는가 忽有孤鴻天外過(홀유고홍천외과) 문득 외기러기 하늘 너머로 날아가니 來時應自漢陽城(내시응자한양성) 아마도 저 기러기 한양성으로..

(얼레빗 4159호) 채용신이 그린 항일의병장 <최익현상>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은 조선시대 마지막 초상화가로 많은 사람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지금 남아 전하는 채용신의 초상화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은 사대부상과 유학자상입니다. 특히 채용신이 을사늑약으로 군수직을 그만두고 낙향한 뒤로는 74살의 고령으로 의병을 일으킨 항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