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반정 9

(얼레빗 제5005호) 광해군의 총애를 받은 김개시, 비선실세였다

“김개시는 친척 딸의 남편인 ‘정몽필’을 양자로 삼아, 뇌물 챙기기와 백성을 수탈하도록 했다. 또 김개시는 밤낮으로 정몽필과 방에 틀어박혀 음란한 행동을 일삼았고, 국정농단과 매관매직 같은 온갖 악한 짓을 함께 저질렀다.” 이는 펴낸이를 알 수 없는 책으로 조선시대 야사와 잡록을 모아놓은 《대동야승(大東野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김개시는 조선후기 제15대 광해군의 총애를 받아 권세를 누린 궁녀인데 민첩하고 꾀가 많았으며, 이를 배경으로 국정에 관여하여 권신인 대북(大北)의 영수 이이첨(李爾瞻)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윤선도(尹善道)ㆍ이회(李洄) 등이 여러 차례 상소하여 잘못을 지적하였으나, 도리어 그들이 유배되고 말았지요.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이 일어..

《광해군일기》 – 묘호(廟號))를 못 받은 임금의 역사

▲ 《광해군일기》, 조선 1634년, 44.5×31.0cm, 국보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는 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아래 《 실록》) 가운데 광해군(1575~1641, 재위 1608~1623) 시기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 사실을 연월로 기술하는 편찬 방법)로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은 1624년(인조 2)부터 편찬이 시작되었고, 1633년(인조 11) 중초본(中草本)’ 1부가, 이듬해 5월에 중초본을 검토하고 옮겨 쓴 정초본(正草本) 2부가 완성되었습니다. 이후 《광해군일기》 중초본’은 태백산 사고(경북 봉화)에, 정초본 2부는 정족산 사고(강화도)와 적상산 사고(전북 무주)에 1부씩 봉안(奉安)되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광해군일기》는 적상산 사고에 보관되었던 1책..

(얼레빗 제4859호) 김육, 백성의 삶 체험하고 대동법 외쳐

충청 감사 김육(金堉)이 보고를 올리기를, "선혜청(宣惠廳)의 대동법(大同法)은 실로 백성을 구제하는 데 절실합니다. 경기와 강원도에 이미 시행하였으니 본도(本道)에 무슨 행하기 어려울 리가 있겠습니까. (가운데 줄임) 지금 만약 시행하면 백성 한 사람도 괴롭히지 않고 번거롭게 호령도 하지 않으며 면포 1필과 쌀 2말 이외에 다시 징수하는 명목도 없을 것이니, 지금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방법은 이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위는 《인조실록》 37권, 인조 16년(1638년) 9월 27일의 기록입니다. 김육은 대동법의 시행이 백성을 구제하는 방편이면서 나라 재정확보에도 도움이 되는 시책이라 생각하였던 것이지요. 물론 처음에는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지만, 효종을 설득하여 효종 2년에는..

뼈다귀를 놓고 뭇 개들이 싸우는구나

투구행(鬪狗行) - 권필 誰投與狗骨(수투여구골) 누가 개에게 뼈다귀 던져 주었나? 群狗鬪方狠(군구투방한) 뭇 개들 사납게 싸우는구나 小者必死大者傷(소자필사대자상) 작은 놈은 반드시 죽고 큰 놈은 다치니 有盜窺窬欲乘釁(유도규유욕승흔) 도둑놈이 엿보다 그 틈을 타려 하네 主人抱膝中夜泣(주인포슬중야읍) 주인은 무릎 껴안고 한밤에 우는데 天雨墻壞百憂集(천우장괴백우집) 비 내려 담장 무너져 온갖 근심 모인다 위 시는 석주 권필의 ‘투구행(鬪狗行)’이란 시다. 우의적(寓意的) 방법을 써서 당쟁(黨爭)을 일삼는 당시 정치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뼈다귀를 던져 주자 뭇 개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무섭게 싸운다. 이때 작은놈은 죽고 큰놈은 다친다. 도둑놈은 그 틈을 엿본다. 그 틈에 나라의 방비는 무너진다. 여기서..

(얼레빗 제4730호) 사연을 간직한 비, 유두물ㆍ태종우ㆍ살창우

요즘은 장마철이어서 비가 억수로 올 때가 잦습니다. 그런데 내리는 비에도 사연을 간직한 경우가 있습니다. 명절인 유두날(음력 6월 15일)에 비가 오면 ‘유두물’이라고 하는데 이 유두물이 오면 연사흘 내리 내린다고 합니다. 그것은 부녀자들의 바깥나들이가 안되던 시절에 특별히 나들이를 허락받은 날임에도 비가 내리면 나들이를 하지 못해 그 한이 서려 사흘 동안이나 내린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특정한 날에 내리는 비에는 태종우도 있습니다. ▲ 우중(雨中)>, 그림 운곡 강장원 작가 ‘태종우(太宗雨)’는 심한 가뭄이 들어 백성이 고통받자 태종임금이 내가 죽어 하늘에 빌어 비가 오게 하리라고 유언하면서 죽었는데 죽은 그날 비가 내렸음은 물론 그 뒤 해마다 그날 곧 음력 5월 10일이 되면 태종우가 내렸다고 하지요...

조선 산책 - 신병주

산책을 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신문에 연재되었던 칼럼을 모아 놓은 책으로, 짧은 글을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소개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국민투표에서 지역별 인재할당까지, 시대를 앞선 정책들 조선시대 다양한 정책은 현대사회에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민주사회와 전통시대를 구분하는 지표 중의 하나가 투표다. 그런데 1430년 세종이 이미 국민투표를 통해 토지에 세금을 부과하는 ‘공법’을 집행한 것은 놀라움을 준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은 과거시험의 지역별 합격자 수를 정해두었는데, 이는 오늘날 공공기관의 지역별 인재할당 정책을 떠오르게 한다. 한편 강직한 성품으로 반대파들에게까지 추천받은 영의정 이원익은 부정부패로 얼룩진 공직자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어..

냇물에 몸을 씻다[浴川] - 올바름을 실천했던 조식과 제자들

全身四十年前累(전신사십년전루) 온몸에 사십년 동안 쌓인 찌꺼기를 千斛淸淵洗盡休(천곡청연세진휴) 천 섬 되는 맑은 물에 씻어 버리리 塵土倘能生五內(진토당능생오내) 그래도 티끌이 오장에 생긴다면 直今刳腹付歸流(직금고복부귀류) 당장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리 남명 조식(南冥 曹植. 1501~1572) 선생이 1549년에 제자들과 거창 신원면의 감악산을 유람할 때 지은 시라고 합니다. 남명은 감악산 계곡물에 들어가 몸을 씻으며 이 시를 지었다고 하지요. 조선의 양반이 홀라당 벗고 계곡물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 같고, 아마 탁족(濯足) 곧 물에 발을 담그고 이 시를 짓지 않았을까요? 남명은 16세기 조선의 대유학자입니다. 그런데 그런 유학자가 티끌이 오장에 생긴다면 당장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다니..

주경야독 끝에 대동법을 관철한 김육

주경야독 끝에 대동법을 관철한 김육 옛 역사는 보고 싶지가 않네 古史不欲觀 볼 때마다 눈물이 흐르는 걸 觀之每并淚 군자들은 반드시 고통을 당하고 君子必困厄 소인들은 득세한 자들이 많으니 小人多得志 성공할 즈음이면 문득 패망 싹트고 垂成敗忽萌 편안해질 듯하면 이미 위태함 따라오네 欲安危已至 삼대시대 이후로 오늘날까지 從來三代下 하루도 올바로 다스려진 적 없는데 不見一日治 백성들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生民亦何罪 저 푸른 하늘 뜻 알 수가 없네 冥漠蒼天意 지난 일도 오히려 이러하거늘 旣往尙如此 하물며 오늘날의 일이겠는가 而況當時事 조선 중기 문신 잠곡(潛谷) 김육(金堉, 1580∼1658년)이 지은 「관사유감(觀史有感, 옛 역사를 보면)」입니다. 소인들이 권세와 명예와 부를 차지하고 군자는 늘 고통을 면치 못..

공신전을 백성에게 돌려준 청백리 이해

공신전을 백성에게 돌려준 청백리 이해 ‘공신전(功臣田)’은 고려·조선시대에 나라 또는 왕실에서 특별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준 땅을 말합니다. 특히 나라를 연다든지 새로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공로가 큰 신하에게 주는 경우가 많았지요. 조선시대에는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태조 때 책봉된 개국공신(開國功臣)을 비롯하여 태종·단종·세종·중종·인조·영조 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19회에 걸쳐 공신을 책봉하고 공신전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공신전은 개인 재산이 되어 상속이 가능할뿐만 아니라 세금도 면제되었습니다. 이 공신전을 받은 사람으로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 때의 이해(李澥, ?∼1670년)도 있지요. 그는 반정의 공으로 개성부 유수 벼슬을 받은 것은 물론 공신전 150결(약 165만 평)을 받았습니다. 여의도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