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13

(얼레빗 제5044호) 처용, 역신을 해학으로 쫓아내

“서울(지금의 경주) 밝은 밤에 밤늦게 노니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도다. 둘은 나의 것이었고,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이 노래는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지었다는 8구체 향가 “처용가"입니다. 또 《삼국유사》의 조에 보면 동해 용왕(龍王)의 아들로 사람 형상을 한 처용(處容)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 천연두를 옮기는 역신(疫神)으로부터 인간 아내를 구해냈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그 설화를 바탕으로 한 처용무는 동서남북 그리고 가운데의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흰색ㆍ파랑ㆍ검정ㆍ빨강ㆍ노랑의 옷을 입은 5명의 남자가 춤을 춥니다. 처용무의 특징은 자기 아내를 범하려는 역신을 분노가 아닌 풍류와 해학으로 쫓아낸다는 데 있습니다. 춤의 내용은 음양오행설의 ..

‘2023년 전국 수문장 임명의식’ 특별행사 열어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정성조)는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과 함께 오는 26일 낮 2시 경복궁 흥례문 일원에서 행사를 연다. ‘전국 수문장 임명의식’은 《조선왕조실록》 예종 1년(1469년) 처음으로 수문장 제도를 시행한 기록을 극 형식으로 재현한 궁궐 문화행사로서, 당시 수문장은 추천된 고위 관원의 명단 가운데 임금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의 이름에 점을 찍는 낙점(落點) 과정을 거쳐 임명되었다고 한다. 2010년 행사가 처음 시행된 때에는 해마다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인물을 뽑아 임명 의례를 재현하는 ‘명예 수문장 임명식’ 형태로 진행해 왔으나,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20돌을 맞은 작년부터는 전국 수문장을 초청하는 임명식으로 그 규모가 확대되었다. 이번 행사에는 전국을 대표하는 7개 수문장들..

(얼레빗 제4763호) 임금 행차 때 연주하던 곡 <대취타>

“명금일하대취타(鳴金一下大吹打) 하랍신다.” 이는 를 시작할 때 철릭(무관이 입던 공복으로 허리에 주름이 잡힌 옷)을 입고 전립(戰笠, 무관이 쓰던 벙거지)을 쓴 집사(執事)가 지휘봉이라 할 수 있는 등채를 들고 호령하는 소리입니다. 이는 징을 한번 크게 울려서 관악기를 크게 불고, 타악기를 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는 국가무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된 임금의 행차나 군대의 행진 그리고 개선 등에 사용한 대규모 연주입니다. 악기는 징ㆍ장구ㆍ북ㆍ나발ㆍ소라ㆍ태평소 등으로 편성되지요. ▲ 행진, 2006, 서울 창덕궁, 국립무형유산원 제공 는 ‘무령지곡(武寧之曲)’, ‘구군악(舊軍樂)’이라고도 부릅니다. 여기서 ‘무령지곡’은 씩씩하고 편안하다는 뜻으로 조선시대의 공식 이름입니다. 그리고 ‘구군악’은 ..

늦더위 속의 창덕궁 공부하기

지난 6월 말 회사 후배들과 함께 아침 일찍 창덕궁과 후원을 관람한 적이 있는데 마침 약 석 달쯤 지난 지난주 토요일에 우리 집안 화수회 회원들과 함께 창덕궁을 답사하는 기회가 있었다. 계절은 9월 중순인데도 덥다 늦여름 날씨 같다. 간간이 해가 나면 등이 뜨겁다. 그렇지만 다시 보는 창덕궁과 후원, 다시 보는 만큼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다. ▲ 창덕궁 인정전(문화재청 제공) ▲ 인정전 내부 ▲ 창덕궁 여러 전각들 인정전 등 큰 전각이 즐비하지만, 대부분은 보았던 것이어서 대충 보고는, 이번에는 집안 아지매 누님들도 있고 해서 왕비의 거주공간인 대조전 구역으로 같이 들어가니 뒤편에 아름다운 계단식 정원과 함께 괴석이 두 개가 보인다. 그 가운데 하나에는 소영주(小瀛洲)라 쓰여 있다. 작은 영주산이란..

세자의 공간, 동궁 (3) - 세자 신분의 특수성과 의례

3. 세자 신분의 특수성과 의례 세자는 차기 왕위계승자를 미리 책봉하여 왕권 계승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하여 ʻ사왕嗣王ʼ으로 예정된 인물이다. 따라서 몇가지 특수한 신분적 특징을 갖게 된다.(이효석, 2005 참조) (1) 세자로 책봉되어 즉위하거나, 사망하거나, 폐위될 때까지 존재하는 임시적 존재로서, 항상 존재하는 신분이 아니라 특정 기간동안 존재한다. (2) 세자는 궁궐 내에서 독립적 영역으로 인식되는 동궁이라는 공간에서 생활한다. (3) 세자는 신하의 입장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왕을 대신하는 입장이기도 하여 군신관계 로 보면 양면성을 띤다. (4) 세자는 대개 궁궐 내의 다른 인물들에 비해 나이가 어리다. 먼저, 세자의 재위기간이 연속적이 아니라 일시적이라는 점은 동궁이라는 공간이 항상 동일한 기능으..

세자의 공간, 동궁 (2) - 동궁의 위치와 구성

2. 동궁의 위치와 구성 개념적으로 동쪽에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더라도 그 위치가 명확하게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역대 왕조의 궁궐에서는 동궁을 임금의 영역 동쪽에 조성하였다. 자금성 등 중국의 궁궐도 그러하고, 개경의 경우 『고려도경』에 ʻ동쪽 문에는 ʻ春德ʼ이라 편액했는데, 세자궁으로 통한다 ~ 좌춘궁은 회경전 동쪽 춘덕문 안에 있다. 왕의 적장자가 처음으로 책봉되면 세자라 하고, 관례 이후 여기에 거처했는데, 옥우의 제도는 왕궁만 못하다.ʼ라고 하여 세자궁이 명실상부하게 동쪽에 있는 동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동궁 전각은 대체로 ʻ당堂ʼ호를 갖고 있다. 임금의 전각이 ʻ전殿ʼ으로 지칭되는 것과는 차등을 둔 것이다. 경복궁의 경우 임금의 전각은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등으로 ʻ전호ʼ..

조선 궁중문화의 터전 궁궐 - 궁궐의 역사: 양궐체제의 변천

2. 궁궐의 역사: 양궐체제의 변천 “서울에는 궁궐이 다섯이 있다”고 흔히 말하는데 이는 엄밀히 따지자면 틀린 말이 다. 왕국이 사라지고 임금도 사라진 오늘날 대한민국 서울에는 궁궐이 있을 수 없다. 예전에 있었다는 뜻이라면 궁궐이 아니라 고궁(古宮)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서울에 고궁이 다섯이 있다”고 할 수도 없다. 고궁이라고 하려면 어느 정도는 궁궐 모양을 갖추어야 할텐데 다섯이 모두 고궁 모양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서울에 있던 궁궐을 다 따지면 다섯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또한 그 다섯 궁궐이 동시에 있었던 적은 없다. 하나만 있던 적도 있고, 많을 때는 넷이 있기도 하였다. 궁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갔다. 이러한 궁궐의 변천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

책가도 병풍 기념우표

‘책가도(冊架圖)’는 책장 선반에 책과 문방구, 도자기, 청동기, 꽃과 과일 등 다양한 물건이 놓인 모습을 그린 병풍으로, ‘책거리’라고도 불립니다. 조선 후기인 18세기에 귀한 책을 모으고 골동품을 감상하는 취미가 널리 퍼지면서 책가도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문치 정치를 표방했던 정조의 책가도 사랑은 유별났습니다. 정조는 창덕궁 어좌 뒤에 책가도 병풍을 펼쳐놓고 신하들에게 자신의 뜻을 설명했고, 국왕 전속 화가인 ‘자비대령화원’의 고과 평가 때에도 책가도를 그리게 했다고 합니다. 19세기 최고의 책가도 화가로 손꼽히는 사람은 이형록입니다. 이형록은 대대로 도화서화원을 배출한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아버지 이윤민도 책가도로 이름을 남겼고, 손자인 이덕영까지 이를 잘 그려 집안에서 화법을 계승했음을 ..

(얼레빗 4358호) 조선독립만세’, 학생들의 <6·10만세운동>

“조선 민족아! 우리의 철천지원수는 자본제국주의 일본이다. 2,000만 동포야 죽음을 결단코 싸우자 만세! 만세! 조선독립만세!” 이는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因山日, 장례일)을 기해 만세시위로 일어난 의 한 격문입니다. 은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이 연합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지만, 사전에 일제 경찰에 들켜 무산되었습니다. ▲ 서울 종로3가 단성사 앞에 있는 선창터 하지만, 확산해온 학생운동 조직은 준비과정에서 일경에 들키지 않았지요, 먼저 조선학생과학연구회 중심의 사직동계가 주도했는데 화요회계와 통동계가 연합하여 태극기 300장과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깃발 30장을 만들었으며, 명함인쇄기 한 대를 구해 초안한 격문 1만여 매를 인쇄했습니다. 6월 10일 순종의 장례 행렬은 창덕궁..

(얼레빗 3960호) 한 많은 경희궁, 원래 경덕궁이었다

한국문화편지 3960호 (2018년 11월 30일 발행) 한 많은 경희궁, 원래 경덕궁이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960][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태종 5년에 지은 창덕궁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렸는데 광해군 때 복구는 하였지만, 광해군은 창덕궁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일부 풍수지리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