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 5

(얼레빗 제4832호) 서당, 천자문이 끝나면 《동몽선습》을 배웠다

지난 2019년 국립중앙도서관은 “천자문, 종류가 이렇게나 많아요!” 전(展)을 열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글씨 교본으로서의 천자문(千字文)을 우리나라에서 펴낸 것은 110종이라고 합니다. 서예 대가로 알려진 한석봉(1543~1605)의 목판본 천자문은 정자체인 해서(楷書)의 글씨 교본으로 사용되었고 천자문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책입니다. 그런데 옛날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운 바로 뒤는 무슨 책으로 공부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조선 명종 때 학자 박세무(朴世茂)와 민제인(閔齊仁) 쓴 것으로 알려진 《동몽선습(童蒙先習)》이란 책이지요. ▲ 어린이가 천자문 다음으로 공부했던 《동몽선습(童蒙先習)》 춘방판,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책은 《천자문》을 익히고 난 뒤의 아이들이 배우는 초급교재로, 앞에선 부자유친, 군신..

한글을 다시 일으킨 최세진

백조라 슬픈 미운 오리 새끼 최세진(崔世珍, 1468~1542)은 사역원정(司譯院正, 조선 시대에 외국어 번역 및 통역 일을 맡아보던 관아인 사역원에 두었던 정삼품 관직) 최정발(崔正潑)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중국어를 배운 최세진은 신분은 낮았지만(중인 계급) 외국어 능력으로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바로 이 점이 사대부들에게는 ‘눈엣가시’ 같았다. 신분은 낮은데 능력이 뛰어나니 인정할 수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세진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연산군 때 최세진은 왕을 비방하는 익명의 투서를 쓴 범인으로 지목되어 누명을 뒤집어 쓸 위기에 처했다. 승지 권균이 그의 무죄를 입증해 주지 않았다면 그는 화를 면할 수 ..

주경야독 끝에 대동법을 관철한 김육

주경야독 끝에 대동법을 관철한 김육 옛 역사는 보고 싶지가 않네 古史不欲觀 볼 때마다 눈물이 흐르는 걸 觀之每并淚 군자들은 반드시 고통을 당하고 君子必困厄 소인들은 득세한 자들이 많으니 小人多得志 성공할 즈음이면 문득 패망 싹트고 垂成敗忽萌 편안해질 듯하면 이미 위태함 따라오네 欲安危已至 삼대시대 이후로 오늘날까지 從來三代下 하루도 올바로 다스려진 적 없는데 不見一日治 백성들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生民亦何罪 저 푸른 하늘 뜻 알 수가 없네 冥漠蒼天意 지난 일도 오히려 이러하거늘 旣往尙如此 하물며 오늘날의 일이겠는가 而況當時事 조선 중기 문신 잠곡(潛谷) 김육(金堉, 1580∼1658년)이 지은 「관사유감(觀史有感, 옛 역사를 보면)」입니다. 소인들이 권세와 명예와 부를 차지하고 군자는 늘 고통을 면치 못..

이도령이 춘향이를 그리면서 읽은 어뚱한 천자문

오메불망 우리 사랑 규중심처 감출 ‘장’, 부용작약의 세우 중에 왕안옥태 부를 ‘윤’, 저러한 고운태도 일생 보아도 남을 ‘여’, 이 몸이 훨훨 날아 천사만사 이룰 ‘성’, 이리저리 노니다가 부지세월 해 ‘세’, 조강지처는 박대 못 허느니 대전통편의 법중 ‘율’, 춘향과 날과 단둘이 앉어 법중 ‘여’, 자로 놀아보자. 김세종제 사설 가운데 ‘천자 뒤풀이’ 대목입니다. 원래 『천자문(千字文)』은 중국 양(梁)나라 때 주흥사(周興嗣)가 1구 4자로 250구, 모두 1,000자로 지은 책이지요. 하룻밤 사이에 이 글을 만들고 머리가 허옇게 세었다고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한자(漢字)를 배우는 입문서로 널리 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천자문이 나왔는데 특히 석봉 한호..

7월 8일 - 오늘은 누룽지 날, 부모님 생각하며 누룽지를 먹습니다

옛날 서당에서 천자문을 외우던 아이들은 장난으로 “하늘 천 따 지 깜 밥 눌은 밥” 또는 “하늘 천 따 지 가마솥에 누룽지”라고 했다지요? 누룽지는 별 군것질 거리가 없던 옛날 아이들에게는 귀중한 먹을거리였으며, <동의보감>에는 누룽지를 취건반이라고 하여 약으로도 썼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