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불망 우리 사랑 규중심처 감출 ‘장’, 부용작약의 세우 중에 왕안옥태 부를 ‘윤’, 저러한 고운태도 일생 보아도 남을 ‘여’, 이 몸이 훨훨 날아 천사만사 이룰 ‘성’, 이리저리 노니다가 부지세월 해 ‘세’, 조강지처는 박대 못 허느니 대전통편의 법중 ‘율’, 춘향과 날과 단둘이 앉어 법중 ‘여’, 자로 놀아보자.
김세종제 <춘향가> 사설 가운데 ‘천자 뒤풀이’ 대목입니다. 원래 『천자문(千字文)』은 중국 양(梁)나라 때 주흥사(周興嗣)가 1구 4자로 250구, 모두 1,000자로 지은 책이지요. 하룻밤 사이에 이 글을 만들고 머리가 허옇게 세었다고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한자(漢字)를 배우는 입문서로 널리 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천자문이 나왔는데 특히 석봉 한호가 지은 『석봉천자문』이 가장 유명합니다.
그런데 앞의 <춘향가> 사설을 보면 이몽룡이 원래의 천자문을 읽을 정신이 없습니다. 광한루에서 춘향을 보고 한눈에 반한 이몽룡이 방자를 보내 만나기를 청하지만 춘향을 “꽃이 어찌 나비를 찾느냐”면서 자신을 찾아오라는 뜻을 은근히 비칩니다. 그러자 이몽룡이 춘향을 만나러 갈 밤이 되기를 기다리면서 천자문을 잡지만 책에 쓰인 글 대신 춘향이 만날 생각에 엉뚱한 천자문이 되어 나오는 것이지요.
이 ‘천자 뒤풀이’처럼 말을 재미있게 엮어나가는 것으로 ‘국문 뒤풀이’도 있습니다. ‘국문 뒤풀이’는 서울 지방에서 널리 불리던 경기잡가(京畿雜歌)의 하나로 ‘언문 뒤풀이’라고도 하는데, 국문 곧 우리말로 된 여러 가지 말을 엮어나가는 것입니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 잊었구나 기역 니은 디귿 리을 기역 자로 집을 짓고 지긋지긋 지긋이 살겠더니 가갸거겨 가문 높은 우리 임은 거룩하기 짝이 없네”라고 노래합니다. 판소리든 잡가든 사설을 알고 들으면 참 재미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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