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결백 5

재미있는 우리 속담 - 놀란 토끼 벼랑바위 쳐다보듯

속담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를 켜켜이 쌓아 온 지층의 단면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대로 뭇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노래나 판소리에 속담이 슬쩍 끼어들기도 하고 노래나 판소리의 한 구절이 속담으로 다시 전승되기도 합니다. 이름난 소설이나 널리 알려진 이야기의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처럼 공유하는 사람살이의 한 장면을 대변합니다. 예를 들어 춘향이네 집의 속사정이나 심 봉사의 기구한 사연을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 직접 겪은 일인 양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투로 말하곤 하지요. 밥 얻으러 온 동생에게 밥풀 묻은 주걱이나 날리는 놀부의 심보에 같이 분개하기도 하고 춘향이가 보고 싶어 애타는 이 도령의 심정을 자신의 일처럼 애닳아하기도 합..

청백리 인정받자 사양한 조사수

청백리 인정받자 사양한 조사수 소신은 천성이 본래 잔약하고 어리석어서 남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남들이 혹시 주는 것이 있으면 받아서 먹기도 하였으니 청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전하께서 너그러이 용납하시어 탐관오리를 면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데 사실과 달리 넘치는 이름을 얻고 보니, 이는 신이 하늘을 속이는 죄를 받을 뿐만 아니라 깨끗한 정사(政事)를 지향하는 전하께도 혹 누가 될는지 두려우며 몸 둘 바를 몰라 저도 모르게 이마에 땀이 맺히고 등에도 땀이 흐릅니다. 청백리의 이름을 지워주소서. 이는 유배지나 다름없는 제주목사가 되어 갔다가 제주의 문제점을 소상히 적어 올린 뒤 제주도 방어문제로 노심초사하던 임금에게서 청백리로 인정받은 송강(松岡) 조사수(趙士秀, 1502∼1558년)가 한 말입니다. 이..

이조판서 오윤겸,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울다

이조판서 오윤겸,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울다 조선 중기, 하루는 정사를 마치고 인조 임금과 신하들 사이에 술자리가 벌어졌습니다. 이때 문신 오윤겸(吳允謙, 1559∼1636년)이 매우 취하여 임금 앞에 엎드려 울었지요. 이에 임금이 무슨 까닭인지 묻자 “나라가 망하려고 해서 웁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재차 임금이 왜 나라가 망하느냐고 물었고, 오윤겸은 “신이 사사로이 아는 사람을 처음 벼슬하는 사람으로 추천하였는데, 전하께서 누구냐고 물으셨을 때 사사로운 관계라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낙점하셨습니다. 이에 전하께서 신과의 인연에 구애되어 바른 도리로 신하를 꾸짖지 않으신 것입니다”라고 말했지요. 오윤겸은 벼슬자리를 사사로이 줄 수가 없는데도 물욕에 눈이 어두워 임금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며 울었..

홍수주가 치마에 포도를 그린 까닭은?

홍수주가 치마에 포도를 그린 까닭은? 조선 중기에 매화, 대나무, 포도를 잘 그린 선비 화가 홍수주(洪受疇, 1642∼1704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환갑을 맞자 그 부인이 이웃에서 치마를 빌려 딸에게 입혔지요. 그때까지 딸한테 비단 치마를 입힐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환갑 잔칫날만은 빌려서라도 입히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손님들은 치마를 빌린 줄은 모르고 홍수주 딸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음식상을 다루던 딸의 치마에 간장 방울이 튀어 얼룩이 지고 말았습니다. 큰일이었지요. 가난하여 치마를 해줄 형편이 못되던 홍수주는 고민 끝에 얼룩진 치마에 일필휘지로 포도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얼룩이 진 곳에 탐스러운 포도송이와 포도 잎사귀를 그리자 치마는 한 폭의 훌륭..

10월 22일 - 40년 정승살이에 남은 것은 비바람 피할 초가 두 칸입니다

"알았다. 40년 동안 정승 노릇을 하였는데 비바람도 가리지 못하는 몇 칸짜리 초가에 살다니 그의 청렴결백함과 안빈낙도함은 옛날에도 없던 일이다. 내가 평소 존경하고 사모하는 것이 공덕(功德)이 있어서일 뿐만이 아니다. 이 공(李公)의 청렴과 검소를 백관(百官)이 본받는다면 어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