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8

욱일기 바탕인 무궁화, 우리 국화 될 수 없다

나는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가 나오고 지방자치단체들이 우리나라의 국화라면서 무궁화를 심고 무궁화공원을 만들곤 하는 것이 이상스럽기만 했다. 특히 우리 역사서와 문학 그리고 그림에도 등장하지 않는 무궁화가 어찌 갑자기 국화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그러다가 최근 강효백 교수의 책 《두 얼굴의 무궁화》와 《한국 진달래 오라》을 읽고 그 궁금증이 확연히 풀렸다. ▲ 강효백 교수의 책 《두 얼굴의 무궁화》와 《한국 진달래 오라》 표지 강 교수는 먼저 머리말에서 ‘우리나라 옛시조 3,355수 중 단 한 수라도 무궁화를 노래했더라면’, ‘약 4,965만 자의 조선왕조실록에 무궁화가 단 번이라도 나왔더라면’, ‘화훼식물이 등장하는 조선시대 그림 154점 가운데 무궁화 그림을 단 한 점이라도 볼 수 있었더..

7대 역사서, 문학 작품, 그림에 없는 무궁화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꽃은 무궁화임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을 불렀고, 무엇보다도 애국가 가사에 ‘무궁화 삼천리’가 나오니까요. 그런데 왜 무궁화가 나라꽃(國花)인지 생각해보신 적 있습니까? 사실 무궁화는 공식적으로 나라꽃으로 지정된 것도 아닙니다.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가 ‘무궁화가 왜 나라꽃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파고들어 《두 얼굴의 무궁화》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 《두 얼굴의 무궁화》, 강효백, 이담북스 강 교수는 전 세계의 나라꽃을 조사해보니, 세계 각국은 나라꽃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5가지 특성을 보유했거나, 보유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합니다. ⓵ 지리성 : 원산종 또는 자생지가 분포하고 있거나 국토 대부분 지역에서 재배가..

(얼레빗 제4768호) 이완용에게 을사늑약을 종용했던 이인직

106년 전(1916년) 오늘은 소설가 이인직(李人稙, 1862∼1916)이 죽은 날입니다. 우리는 학창시절 이인직이 《혈(血)의 누(淚, 1906)》, 《귀(鬼)의 성(聲, 1908)》, 《치악산(雉岳山, 1908)》, 《은세계(銀世界, 1913)》 따위 신소설을 쓴 작가라는 말을 배웠습니다. 특히, 《혈(血)의 누(淚)》는 첫 장편소설로서 본격적인 신소설의 효시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배워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 소설가 이인직(李人稙, 1862∼1916)과 이인직의 신소설 《혈(血)의 누(淚)》 재판 표지(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그러나 이윤옥 시인의 시집 《사쿠라 불나방(도서출판 얼레빗, 2011》에 따르면 《혈(血)의 누(淚)》 작가 이인직이 일본 유학시절 스승인 미도리 교수에게 찾아가서 ..

왕릉 가는 길 - 신정일

조선 최초의 왕릉 정릉부터 정조의 건릉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례길, 600킬로미터 조선 왕릉 길을 걷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릉은 그 아름다움과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한반도에서도 명당 중의 명당에 위치한 것이 왕릉인데, 가까이에 살면서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던 중 문화재청은 10여 년의 복원 노력의 결실로 2020년 가을 ‘조선 왕릉 순례길’을 개방했다. 서울 정릉부터 영월 장릉까지 조선 왕릉을 잇는 600km의 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시코쿠 순례길처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조선 왕릉 순례길과 각각의 왕릉 내부 숲길을 걸어볼 수 있다. 이 책은 도보답사 전문가 신정일 작가가 조선 왕릉 49곳을 하나하나 ..

겨울 눈과 봄의 꽃은 모두 참이 아니다 – 한용운, 「견앵화유감」

겨울 눈과 봄의 꽃은 모두 참이 아니다 – 한용운, 「견앵화유감」 지난 겨울 꽃 같던 눈 昨冬雪如花 올 봄 눈 같은 꽃 今春花如雪 눈도 꽃도 참이 아닌 것을 雪花共非眞 어찌하여 마음은 미어지려 하는가 如何心欲裂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이 옥중에서 쓴 「견앵화유감(見櫻花有感, 벚꽃을 보고)」입니다. 그렇습니다. 겨울에는 눈이 꽃 같았고, 봄에는 꽃이 눈인 듯합니다. 눈도 꽃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눈과 꽃에 마음을 빼앗기지요. 한용운 같은 위대한 선각자도 눈과 꽃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는데 중생이야 어쩌겠습니까? 일제강점기 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는 “만해 한 사람 아는 것이 다른 사람 만 명을 아는 것보다 낫다”라고 했으며, 일제강점기 큰스님 만공선사는 ..

(얼레빗 4666호)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 오늘 순국

“한 잔 술을 차려 놓고 ‘우리 상진아’ 하고 가슴을 치면서 고한다. 네가 죽던 날, 주검을 수레에 싣고 돌아왔을 때는 성안에 있는 네 벗들이 모두 너를 어루만지면서 울음을 터뜨렸었다.(…) 길거리에 가득한 남녀들이 상여를 따라 통곡하자, 길을 가던 남모르는 나그네까지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義士)의 삼년상을 마치던 날 대한제국 홍문관 교리였던 박 의사의 아버지 박시규가 비통한 심정으로 지은 제문 일부입니다. ▲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1884. 12. 7~1921. 8. 13), 출처 국가보훈처 박상진 의사는 나라를 잃은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 평양법원 판사로 발령받았지만, 곧바로 사직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박 의사는 1915년 대구..

(얼레빗 4417호) 친일시 뜯어내고 차례는 창호지로 가린 시집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 의 시인 노천명은 109년 전 오늘(9월 1일) 태어났습니다. 그 노천명은 두산백과에 ‘한국의 시인’이라고 요약되어 있지만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ㆍ13ㆍ17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노천명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청년들의 적극적인 전쟁 참여를 권유하는 , , 등을 발표하고, 친일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산하 부인대(婦人隊) 간사를 맡을 정도로 친일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천명에게는 웃지 못할 일화가 따라 다닙니다. 그것은 광복 직전인 1945년 2월 25일 펴낸 시집 《창변(窓邊)》에 관한 이야기지요. 노천명은 《창변》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이 시집 끝에는 9편의 친일시가..

11월 25일 - 이인직의 죽음, 마냥 애도할 수가 없습니다

신소설(新小說)이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잇달아 출현한 소설작품을 말합니다. 이 말은 일본에서 쓰이던 것인데, 1906년 <대한매일신보>의 광고에서 처음 보였고 이듬해 <혈의 누>가 단행본으로 나오면서 ‘新小說 血의 淚’라고 밝힘에 따라 이후 보편적인 명칭으로 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