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말 36

저는 서울 사람인데 사투리를 쓴다고요?

전라도에 가면 전라도 방언을, 경상도에 가면 경상도 방언을 어디에서나 쉽게 들을 수 있다. 지역 토박이들이 한 지역에서 오래 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투리를 익히기 때문이다. 서울도 마찬가지로, 서울에서 오래 거주하여 서울말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표준말을 쓴다고 생각하기 쉽다. 정말 ‘서울말’과 ‘표준말’이 같은 말이라고 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같은 말이 아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서울말’은 넓은 의미에서 경기 방언 중 하나다. ‘표준말’은 한 나라의 표준이 되는 말로, ‘우리나라에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표준말로 정한 것이다.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울말이 표준어의 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서울말을 표준말로 오해할 만하다. 표준말과 혼동하..

무더위와 강더위

긴 장마 끝에는 무더위가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식중독이나 장염 같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다. 우리 속담 가운데, “밥은 봄같이 먹고, 국은 여름같이 먹고, 장은 가을같이 먹고, 술은 겨울같이 먹으랬다.”는 말이 있다. 밥은 따뜻하게, 국은 뜨겁게 먹어야 한다는 속담이다. 더운 날씨일수록 너무 찬 음식을 찾기보다는, 선조들의 가르침대로 잘 끓여서 뜨겁게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무더위’는 ‘물’과 ‘더위’가 한몸이 되어 만들어진 말이다. 습도가 높아 찌는 듯한 더위를 가리킨다. 이에 비해, 비가 오지 않아 습기가 없고 타는 듯이 더운 것은 ‘강더위’이다. 흔히 ‘땡볕더위’, 또는 ‘불볕더위’라고 하는 것이 바로 강더위이다. 무더위와 강더위는 둘 다 몹시 ..

떨거지와 떼거지

설 연휴가 눈앞에 다가왔다. 자손이 많은 집에는 명절마다 온 나라 곳곳에서 아들딸과 손주들이 몰려들게 마련이다. 주름 깊게 팬 할머니는 싫지 않게 웃으며 “어이구, 이게 웬 떨거지들이냐!” 하신다. 일가친척 붙이를 ‘떨거지’라고 한다. “그 집도 떨거지가 많다.”처럼 쓴다. 또, 일가친척 붙이는 아니지만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을 한데 아우를 때도 떨거지라고 하였다. 본디는 낮은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에는 한통속으로 지내는 사람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 변하여 쓰이고 있다. ‘떨거지’와 형태가 비슷한 ‘떼거지’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떼를 지어 다니는 거지’가 줄어들어 만들어진 말이다. 흔히 ‘졸지에 거지처럼 되어 버린 사람들’을 비유하는 낱말로 쓰여서, “지난 수해로 그 마을 사람들은 하루아..

노랫말의 반칙

가수 전영록 님이 부른 란 노래는, “꿈으로 가득 찬 설레이는 이 가슴에 사랑을 쓸려거든 연필로 쓰세요.”라고 시작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설레이다’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설레다’가 표준말이다. 이 노랫말의 ‘설레이는’은 ‘설레는’으로 고쳐야 하고, ‘쓸려거든’은 ‘쓰려거든’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아이들이 즐겨 먹는 ‘설레임’이란 얼음과자가 있는데, 이 제품 이름도 ‘설렘’으로 고쳐야 맞는 표현이 된다. 설운도 님의 에 들어있는 “목메이게 불러봅니다”라는 노랫말도 ‘설레는’을 ‘설레이는’으로 잘못 쓴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이때에도 ‘목메이게’가 아니라 ‘목메게’로 바로잡아 써야 한다. 서정주 시인의 작품 도 가수 송창식 님이 대중가요로 만들어 널리 불리고 있는데,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

모밀국수 사리 주세요!

더운 날씨에 많이 찾게 되는 음식 가운데, ‘모밀국수’라 불리는 국수가 있다. 대나무 발에 받친 면을 살얼음 동동 띄운 육수에 담갔다 먹는 그 시원한 맛! 그러나 ‘모밀국수’는 ‘메밀국수’라고 해야 맞다. ‘모밀’과 ‘메밀’은 모두 우리말로서, 이 가운데 ‘메밀’이 오늘날 표준말로 정착하였고, 주로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서 쓰이던 ‘모밀’은 방언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모밀묵이나 모밀떡 들과 같은 말들도 모두 메밀묵, 메밀떡으로 써야 한다. 면을 더 주문할 때, “사리 좀 주세요!”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말이 아니다. ‘사리’는 국수를 동그랗게 감아놓은 뭉치를 세는 단위이지, 국수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밥 한 그릇, 두 그릇 하고 세듯이, 국수 한 사리, 두 사리 하고 세는 ..

흐리멍텅하다

‘흐리다’는 “날씨가 흐리다.”, “물이 흐리다.”처럼, 눈에 보이는 상태가 맑지 않다는 뜻이지만,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분명하지 않다는 뜻을 나타낼 때도 쓰이는 말이다. 이 ‘흐리다’를 바탕으로 해서 “흐리멍텅한 정치인들”이라든가, “일을 흐리멍텅하게 처리했다.”와 같이 ‘흐리멍텅하다’란 낱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예들처럼 ‘정신이 맑지 못하고 흐리다’거나 ‘일의 경과나 결과가 분명하지 않다’는 뜻으로 쓰이는 ‘흐리멍텅하다’는 잘못 쓰고 있는 말이다. 이때에는 ‘흐리멍덩하다’가 바른 표기이다. 옛날에는 ‘흐리믕등하다’로 말해 오다가, 오늘날 ‘흐리멍덩하다’로 굳어진 말이다. 표준말이 아닐 뿐이지 ‘흐리멍텅하다’가 우리말에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북한의 경우에는 ‘흐리멍텅하다’를 우리의 표준어..

딴지를 건다

‘딴지를 건다’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다. 신문 기고란을 읽다 보면, “글쓴이도 이 표현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는 말이 가끔 눈에 띄곤 하는데, 이 말은 사실 잘못 쓰고 있는 것이다. ‘딴지’가 아니라, “글쓴이도 이 표현에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와 같이 ‘딴죽’이라 해야 한다. 이미 동의하거나 약속한 일에 대하여 딴전을 부리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은 ‘딴지’가 아니라 ‘딴죽’이라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딴지’는 없고 ‘딴지치기’가 있다. 딴지치기는 옛사람들이 즐기던 놀이문화인 돈치기의 하나라고 한다. 동전을 벽에 힘껏 부딪치게 한 후, 동전이 벽에서 더 멀리 튀어나온 사람부터 돈이 떨어진 자리에 서서, 그 돈으로 다음 자리에 떨어진 돈을 맞혀서 따먹는 놀이라고 한다. ..

밀월여행

가을은 곡식뿐만 아니라 여름내 공들였던 사랑의 수확물을 거둬들이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가을에는 유난히 혼례를 치르는 연인들이 많다. 게다가 가을은 여행하기가 좋은 계절이라서, 신혼여행 중에 새 생명을 잉태할 확률도 높다. 우리는 혼인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하던 중에 바로 임신해서 낳은 아기를 ‘허니문베이비’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말에도 허니문베이비와 뜻이 같은 말이 있다. 우리 선조들은 혼인하자마자 임신해서 낳은 아기를 ‘말머리아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는 표준말이다. 허니문베이비보다는 ‘말머리아이’가 정겹고 살갑다. 혼인식을 치르고 난 바로 다음의 즐거운 한두 달을 뜻하는 말이 바로 ‘밀월’이다. 이 밀월 기간에 가는 여행을 ‘밀월여행’이라고 하는데, 신혼여행도 혼인..

치렛거리

우리 몸을 치장하는 액세서리를 한자말로는 장식, 또는 장식물이라 하고 순 우리말로는 치렛거리라고 한다. 외모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치렛거리에 무척 공을 들이는데, 치렛거리 착용에 알맞은 우리말을 사용하면 그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일 것이다. 우리 몸의 일부에 착용하는 치렛거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목걸이와 귀고리, 팔찌, 시계, 반지와 같은 것들이다. 얼굴에 달거나 목에 끼우는 것은 ‘걸다’라고 하기 때문에, 귀에 다는 귀고리라든지 목에 끼우는 목걸이는 모두 ‘귀고리를 걸다’, ‘목걸이를 걸다’처럼 ‘걸다’로 쓰는 것이 알맞은 표현이다. 다만, 귀고리의 경우에는 귀에 구멍을 뚫어서 그 구멍에 고리를 끼우기도 하기 때문에 ‘귀고리를 끼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예부터 ‘귀고리’로만 일컬어졌는데 현대국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