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말 36

남북한말 몇 가지

정부의 지원으로 편찬 사업이 막바지에 이르러 있고, 남북한 언어 차이에 관한 우리 사회의 관심도 가볍지 않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말 가운데 우리의 표준어와 북한의 문화어가 혼동되는 사례가 많은데, 이는 남북한 언어 차이가 생각보다 그리 심하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정신이 흐릿한 상태를 흔히 ‘흐리멍텅하다’고 말하지만, 표준말은 ‘흐리멍덩하다’이다. “하마트면 큰일 날 뻔했다.”처럼 ‘하마트면’이라는 말을 즐겨 쓰고 있는데 ‘하마터면’이 표준말이다. 귀지를 파내는 기구를 ‘귀지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표준말은 ‘귀이개’이며, “담배 한 가치만 빌려 주세요.”라고 할 때의 ‘가치’도 표준말로는 ‘개비’라고 해야 한다. 또, 낳은 지 얼마 안 된 어린 젖먹이 아이를 부를 때 ‘애기’라고 하는 ..

놀래키다

‘남을 놀라게 하다’는 뜻으로 쓰는 말은 ‘놀라다’의 사동사인 ‘놀래다’이다. 입말에서 흔히 ‘놀래키다’로 쓰고 있지만 이는 ‘놀래다’의 충청도 지역 방언이다. 물론 사투리라 해서 잘못된 말은 아니지만, 표준말을 써야 하는 언론에서 “그의 은퇴 선언은 유권자들을 깜짝 놀래켰다.”라든지, “마치 온 국민을 놀래키려고 발표한 담화문 같았다.”처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들 문장에서 ‘놀래키다’를 단순히 ‘놀래다’로 고칠 경우 문장이 어색해질 수 있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 각각 ‘놀라게 했다’와 ‘놀래 주려고’ 들처럼 바꿔 주면 자연스럽다. ‘놀래키다’ 못지않게 자주 사용하는 말로 ‘혼내키다’도 있다. “말 안 듣는 아들을 혼내키고 싶다.”와 같이 쓰는데 ‘혼내키다’ 또한 표준말이 아니라 특정 지역 ..

모음소리를 바르게

2020년 새 아침이 밝았다. 묵은해의 그늘진 기억들을 말끔하게 털어버리고 새 마음으로 새 힘을 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세요.’라고 할 때, ‘움츠리다’를 ‘움추리다’로 잘못 쓰는 사례가 많다. 그런가 하면, ‘오므리다’를 ‘오무리다’로 잘못 쓰고 있는 사례도 자주 눈에 뜨인다. 아무래도 ‘으’보다는 ‘우’가 소리 내기 편해서일까?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오므렸던’ 다리를 쭉쭉 뻗어, 새해 첫 걸음을 힘차게 내딛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처럼 우리 말살이에서는 모음소리를 바르게 내지 않는 사례들이 더러 눈에 뜨인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보신각 타종 행사가 단출하게 치러졌다고 하는데, 이때의 ‘단출하다’를 ‘단촐하다’로 잘못 말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또 낮은 건물..

투미하다

돌연히 세상을 등져 버린 서울시장의 자취 뒤에 미투(Me Too) 논란이 다시금 불붙고 있다. 비록 들온말이지만 처음부터 ‘미투하다’는 말이 낯설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이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언뜻 ‘투미하다’는 우리말이 떠올랐다. 어리석은데다가 둔하기까지 한 사람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이다. 경상도 지방에서 ‘티미하다’고 하는 말의 표준말이 ‘투미하다’이다. 억눌리고 감추어 왔던 성 관련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알려 여론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게 미투 운동인데, 아직은 투미한 사람들이 그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 사람은 투미해서 답답하기 짝이 없다.”처럼, 상대방이 자기 말을 잘 못 알아듣고 둔하게 반응할 때에 ‘투미하다’는 말을 쓸 수 있다. ‘투미하다’와 비슷한 뜻을 가진 한자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