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말 36

트로트와 트롯

지난 연말에는 주요 방송사마다 연예대상 시상식 모습을 방영했다. 시상식 하면 떠오르는 것이 빨간 양탄자이다. 이 양탄자를 서양 외래어로 ‘카펫’이라고 한다. 어떤 분들은 ‘카페트’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표준말은 카페트가 아니라 카펫이다. 그리고 미래 세계를 예측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로봇인데, 이 말도 ‘로보트’가 아니라 ‘로봇’이 표준말이다. 그런데 카페트는 카펫이 맞고 로보트는 로봇이 옳다고 하니까, ‘케이크’도 ‘케익’(또는 ‘케잌’)으로 써야 맞는 것으로 혼동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거꾸로, ‘케익/케잌’이 아니라 ‘케이크’가 표준말이다. 마찬가지로, ‘카세트 라디오’라 할 때에는 ‘카셋’이 아니라 ‘카세트’가 맞고, ‘비닐 테이프’도 ‘테입’이 아니라 ‘테이프’가 올바른 말이다. 일상..

천상 여자라고요?

뉴스에서 가끔 “아무개 선수가 보란듯이 2관왕에 올랐습니다.”란 보도를 들을 수 있다. 뭔가 내세울 만하거나 자랑한다는 뜻에서 ‘보란듯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표준말이 아니다. 이 문장은 “아무개 선수가 여봐란듯이 2관왕에 올랐습니다.”로 고쳐 써야 한다. 예전에는 ‘보아란듯이’와 이 말을 줄인 ‘보란듯이’를 모두 쓰기도 했지만, 지금 표준말에는 “우쭐대고 자랑하듯이”라는 뜻으로 ‘여봐란듯이’라는 말만 인정하고 있다. 사극에서 ‘여봐라’란 말을 자주 듣는데, 바로 이 말에서 ‘여봐란듯이’가 나왔다. 맛집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보도자(리포터)가 “싱싱한 횟감이 지천에 널려 있다.”란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지천’(至賤)은 “아주 흔한 것”을 가리킬 때 쓰는 한자말인데, ..

비탈이 가파라서? 가팔라서?

봄볕이 산자락을 다사롭게 어루만지는 계절이 되자 등산객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요즘 산에는 언 땅이 녹으면서 틈이 생겨 바위가 굴러 내릴 위험이 크다고 한다. 비단 바위뿐만 아니라 비탈진 곳도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하겠다. 비탈이 심한 곳에 가보면 “이곳은 가파라서 위험하니 주의하십시오.” 하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가파르다’는 말은 ‘가파른, 가파르니, 가파르고’ 들처럼 쓰이지만, ‘가파라서’라고 하면 어법에 맞지 않다. 이때에는 “이곳은 가팔라서 위험하니 주의하십시오.”처럼, ‘가팔라, 가팔라서’라고 해야 올바른 표현이 된다. 그렇다고 “경험이 모잘라서 위험한 길로만 다녔다.”처럼 ‘모잘라서’라고 말하는 이가 없기를 바란다. ‘가파르다’는 ‘가팔라서’로 쓰이지만 ‘모자라다’는 ‘모자라서’로 쓰인다..

소리와 형태가 다른 말들

대선 투표일을 코앞에 두고 각 후보들마다 표심을 얻기 위해 무척 애쓰고 있다. 이처럼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 몹시 애를 쓸 때 “[안깐힘]을 쓴다.”라 하기도 하고 “[안간힘]을 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글자로 적을 때 어떤 것이 맞는지 헷갈리게 된다. 이 말은 ‘안간힘’으로 적는 것이 표준말이며, 말할 때는 [안깐힘]으로 발음해야 한다. “[대까]를 바란다.”, “[시까]가 얼마입니까?” 하는 말들을 글자로는 ‘대가’, ‘시가’라고 쓰지만, 말할 때에는 [대까], [시까]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가 하면, [안스럽다]와 [안쓰럽다]도 글자로 적을 때와 발음할 때 자주 틀리는 경우다. 이 말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이 괴로운 처지에 있어서 보기에 딱하고 안타깝다는 뜻이다. 앞의 [안깐..

천정인가, 천장인가

물가가 안정되었다는 당국의 발표는 장바구니를 든 서민들에게는 언제나 공중에 뜬 허언이다. 특히 집값과 사교육비는 끝을 모르고 오르고 있다. 물가 인상폭이 큰 것을 두고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고 한다. 이때의 천정부지는 ‘천정을 알지 못하고’라는 뜻으로 쓴 말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천정’은 ‘天井’[텐죠오]라는 일본말의 한자음이다. 우리말은 ‘천정’이 아니라 ‘천장’이라 해야 맞다. ‘천정부지’를 굳어진 말로 보아 국어사전에 올려놓기는 하였지만, 당장 ‘천장부지’로 옮기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이라면 아예 우리말로 바꿔서 “물건 값이 천장을 모르고 올라간다.”고 쓰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집집마다 있는 ‘장롱’도 받아쓰기를 해보면 자주 틀리는 말이다. ‘장롱’의 ‘롱’을 ‘농’으로 잘못 쓰는 사례..

뾰루지와 민낯

졸린 눈꺼풀을 억지로 치켜들고 사무실에 앉아 일하다 보면, 요즘 같은 날씨엔 피부가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간혹 얼굴에 뾰족하게 부스럼이 나서 신경이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부스럼을 흔히 ‘뽀드락지’라고 부른다. 하지만 ‘뽀드락지’는 표준말이 아니다. 특히 경상도 지방에서 ‘뽀드락지’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표준말은 ‘뾰루지’, 또는 ‘뾰두라지’이다. 얼굴에 뾰루지도 없고 여드름이나 기미도 없이 피부가 맑고 깨끗한 여성 분들은 특별히 화장을 하지 않아도 예뻐 보인다. 이처럼 화장을 하지 않은 여자의 얼굴을 가리킬 때 흔히 ‘맨얼굴’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맨얼굴’은 사전에도 없는, 잘못 쓰고 있는 말이다. 이럴 때 쓰는 우리말로, 사전에 ‘민낯’이란 말이 올라와 있다. ‘민낯’은 꾸미지..

‘여우다’와 ‘여의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예식장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아들딸을 다 키워놓으면 자기들끼리 짝을 이뤄서 부모 곁을 떠나는데, 우리말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뜻하는 ‘여의다’와 ‘여우다’가 있다. ‘여의다’는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이별하다.”란 뜻으로 쓰는 말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이 말을 “딸을 여의다.”처럼 ‘딸을 시집보내다’라는 뜻으로도 쓰게 되었다. 본디 딸을 시집보내는 것을 이르는 우리말은 ‘여의다’가 아니라 ‘여우다’이다. “아랫마을 김씨네가 막내딸을 여운다고 해.”처럼 요즘도 시골 어르신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그런데 ‘여우다’가 ‘여의다’와 발음이 비슷한데다가, 아주 옛날에는 딸을 시집보내고 나면 다시는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마치 죽어서 이별한 것과 다름없다 하여 그 슬픈..

당기다, 댕기다, 땅기다

“요즘은 입맛이 당기는 계절이다.”와 “요즘은 입맛이 댕기는 계절이다.”, “입맛이 땅기는 계절이다.” 가운데 어느 것이 올바른 표현일까? ‘당기다’와 ‘댕기다’, ‘땅기다’는 모양과 발음이 비슷해서 혼동하기 쉬운 말들이다. 이들 가운데 ‘입맛이 돋우어진다’, ‘식욕이 당긴다’는 뜻으로 쓰는 말은 ‘당기다’이다. 그러므로 “요즘은 입맛이 땅기는 계절”이 아니라 “입맛이 당기는 계절”이라고 말해야 한다. ‘땅기다’ 또한 표준말이지만 그 뜻과 쓰임이 다르다. 이 말은 ‘몹시 단단하고 팽팽하게 되다.’는 뜻을 지닌 동사이다. “얼굴이 땅긴다.”라든지, “하루 종일 걸었더니 종아리가 땅긴다.”, “너무 크게 웃어서 수술한 자리가 땅겼다.”처럼 쓰인다. 그리고 가끔 “입맛이 댕긴다.”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댕..

‘흐리다’와 ‘하리다’

날씨는 맑거나 맑지 않다. 날씨가 맑지 않은 것은 “날씨가 흐리다.”처럼 ‘흐리다’는 말을 써서 나타낸다. 또, 조금 맑지 않은 듯하면 ‘흐릿하다’고 한다. 사람의 정신도 대자연의 날씨처럼 맑지 않을 때가 있다. 사람의 정신이 맑지 않은 것은 ‘흐리다’의 작은말인 ‘하리다’를 써서 나타낸다. 곧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분명하지 않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 ‘하리다’이다. 기억력이 조금 맑지 않은 듯하면 역시 ‘하릿하다’고 말한다. 자연의 날씨에는 큰말인 ‘흐리다’를, 사람의 정신에는 작은말인 ‘하리다’를 쓴다. 이 ‘흐리다’를 바탕으로 해서 ‘흐리멍덩하다’는 말이 생겨났다. 흔히 “흐리멍텅한 녀석”이라든가, “일을 흐리멍텅하게 처리했다.”와 같이 ‘흐리멍텅하다’라고들 말하고 있지만, ‘흐리멍텅하다’는 말은..

바스스하다, 아스스하다

혼자 지내는 연예인의 일상을 비춰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막 자고 일어난 모습을 나타내는 ‘부시시한 모습’이란 자막을 보았다.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는 모양을 나타낼 때, ‘머리가 부시시하다’, ‘부시시한 머리카락’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는 모두 ‘부스스하다’로 바로잡아 써야 한다.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가 부스스하다.”, “부스스한 머리로 밖에 나갔다.”처럼 말해야 올바른 표현이 된다. 이 ‘부스스하다’의 작은말로 쓰이는 것이 ‘바스스하다’이다. 머리카락이 조금 흐트러져 있으면 ‘부스스하다’보다는 ‘바스스하다’가 어울리는 표현이다. ‘부스스하다’와 비슷한 말 가운데 ‘푸시시하다’가 있다.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을 때라든가, “집 잃은 강아지들은 털이 푸시시하다.” 하고 말할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