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말 36

‘어줍다’와 ‘어쭙잖다’

우리말에 ‘어줍다’는 말이 있다. 서투르고 어설픈 것을 표현할 때, 또는 어쩔 줄을 몰라 겸연쩍거나 어색한 모습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남자가 맞선을 보면서 시선 처리를 잘 못하고 말을 더듬는다든지 하면 “그 남자는 맞선을 보면서 무척 어줍어했다.”라고 쓸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어줍다’는 말은 ‘수줍다’와 비슷한 점이 있다. ‘수줍다’는 “숫기가 없어 다른 사람 앞에서 부끄러워하다.”는 뜻으로, “그 여자는 맞선을 보면서 몹시 수줍어했다.”처럼 쓰인다. 그러니까 어줍은 남자와 수줍은 여자가 맞선을 보게 되면, 얼마나 어색한 자리가 될 것인가. 우리는 ‘어줍게’보다는 ‘어줍잖게’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지만, 바른 표현이 아니다. ‘어줍다’가 “서투르고 어설프다”는 뜻이니까 ‘어줍잖다’라고 하면 그 ..

피로연은 피로를 풀어주는 잔치?

봄빛 짙어지고 봄꽃 흐드러지게 피면서 예식장들은 신이 났다. 요즘엔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는 것을 다들 ‘결혼’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한자말은 ‘혼인’이다. 예부터 ‘혼인식’이나 ‘혼례식’이라고 하였지, ‘결혼식’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 한국어에서 ‘혼인’과 ‘결혼’은 모두 표준말이다. 혼인과 같은 경사스러운 일에 초대하는 편지는 ‘초청장’이라 하지 않고 따로 ‘청첩장’이라고 말한다. 혼인을 알리는 청첩장에 ‘화혼’이라고 쓰인 것을 가끔 볼 수 있는데, ‘화혼’이라는 말이 혼인을 신부 입장에서 따로 부르는 말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화혼은 예전에 혼인을 청첩장에 한자로 쓸 때 멋스럽게 쓰느라 따로 만들어 쓰던 말이었다. ‘혼인’이나 ‘결혼’, ‘화혼’은 모두 같은 말이..

제수씨

새로 이사한 집에 이웃이나 친지를 불러 집을 구경시키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집들이한다’고 말한다. 흔히 집들이에 초대받아 갈 때에도 ‘집들이 간다’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말이다. 새로 집을 지었거나 이사한 집에 집 구경 겸 인사로 찾아보는 일은 ‘집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집들이에 초대받아 갈 때에는 ‘집알이 간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요즘 여기저기 집들이하는 집이 눈에 뜨인다. 회사 동료나 친구 집에 집알이를 가면, 그 집 안주인은 갑자기 손님들의 ‘제수씨’가 되어 버린다. 온종일 음식 마련하느라 분주했던 안주인은 호적에도 없는 여러 시아주버니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옳지 못하다. 친구의 아내를 부를 때에는 일반적으로 ‘아주머니’가 표준말이지만, 상황에 맞도록 알맞은 부름말을 가려 ..

쫀쫀한 사람이 필요해!

집을 짓는 일은 빈틈없는 손길이 필요하다. 공공 시설물 또한 공기 타령, 예산 타령으로 설렁설렁 지어서는 안 된다. 세밀하고 쫀쫀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쫀쫀하다’라는 말에 익숙하지만 대개 “소갈머리가 좁고, 인색하며 치사하다.”는 뜻으로 자주 쓰이는 듯하다. 그래서 방송이나 공식적인 글에서는 이 말을 표준말이 아닐 것으로 생각하고 잘 쓰지 않는 듯도 하다. 그러나 이 말은 ‘존존하다’의 센말로서 당당한 표준말이다. ‘존존하다’는 “천을 짤 때, 곱고 올이 고르게 짜놓은 모양”을 뜻하는 말인데, 이 ‘존존하다’의 센말이 ‘쫀쫀하다’이다. 그러니까 ‘쫀쫀하다’고 하면, “천이 빈틈없이 잘 짜진 것”을 나타낸다. 그 때문에 한편으로 “소갈머리가 좁고 인색한 것”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제 이 말의 “행..

싸가지와 거시기

주변에서 ‘싸가지’란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는데, 방송이나 공공장소에서 이 말을 쓸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다. 아마 이 말이 비속어라고 생각돼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이 말은 사투리(강원, 전남)이긴 하지만 비속어가 아니므로 방송이나 공공장소에서 사용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이 말은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 될 것 같은 낌새’를 뜻하며, 표준말은 ‘싹수’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으면, “싹수가 있다.”, “싸가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잘될 가능성이나 희망이 애초부터 보이지 않으면 “싹수가 노랗다.”, “싸가지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비록 ‘싸가지’란 말이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싸가지’ 자체가 속어나 비어인..

엉터리와 터무니

‘엉터리’는 본디 “사물의 기초”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래서 ‘엉터리없다’고 하면 어떤 일의 기초나 근거가 없다, 곧 이치에 맞지 않다는 뜻이 된다. 이 말을 응용하여 허황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엉터리없는 사람’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엉터리없는 사람’을 그냥 ‘엉터리’라고 하는 것도 표준말로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잘못 알려진 말이 널리 쓰이게 되니까 할 수 없이 표준으로 삼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엉터리’와 비슷한 말 가운데 ‘터무니’가 있다. ‘터무니’는 “터를 잡은 자취”를 뜻하는 말로서, “수십 년 만에 고향에 갔더니 우리 가족이 살던 터무니가 사라졌다.”고 쓸 수 있다. 이 말은 또, 정당한 근거나 이유를 나타내는 말로도 널리 쓰여 왔다. “변명을 하더라..

두루뭉술하거나 빠삭하거나

말이나 행동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를 흔히 ‘두리뭉실하다’ 또는 ‘두리뭉술하다’고 말할 때가 있는데,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이 말들은 ‘두루뭉수리’에서 비롯하였다. ‘두루’라는 말은 “빠짐없이 골고루”라는 뜻이고, ‘뭉수리’는 “모가 나지 않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두루뭉수리’라고 하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게 또렷하지 않은 모양”을 가리킨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두루뭉수리로 넘기면 안 된다.”처럼 쓰는 말이다. 이 ‘두루뭉수리’를 줄여서 ‘두루뭉술’이라고 하기 때문에, ‘두리뭉실하다’나 ‘두리뭉술하다’가 아니라, ‘두루뭉술하다’고 해야 한다. 이 ‘두루뭉수리’와 비슷한 경우로, 말이나 행동을 적당히 살짝 넘기는 것을 “어물쩡 넘어간다.”고 하는데, 이때에도 ‘어물쩡’은 올바른 말이 아니다. ..

으스스한 말, 메슥거리는 속

무더위를 쫓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몸이 오싹해지는 공포 영화를 보는 것이다. 무서운 영화를 볼 때 흔히 ‘으시시하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으스스하다’로 고쳐 써야 한다. “찬 기운이 몸에 스르르 돌면서 소름이 끼치는 듯하다.”란 뜻이다. 이와 발음이 비슷한 말 가운데, “으쓱거리며 뽐내다.”란 뜻으로 ‘으시대다’ 하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 말도 ‘으스스하다’와 마찬가지로 ‘으스대다’로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 한편, 속이 불편하여 울렁거릴 때 흔히 “속이 미식거린다.”라고들 한다. 그런데 ‘미식거리다’나 ‘미식미식거리다’는 표준말이 아니다. 이 경우에는 ‘메슥거리다’나 ‘매슥거리다’가 표준말이고, ‘메슥대다’나 ‘메슥메슥하다’의 형태로도 쓰인다. 이 말은 형용사 ‘메스껍다’ 또는 ‘매스껍다’와 관..

가슴꽃

시월이다. 시월은 문화 국경일인 한글날을 품고 있어서 우리 겨레에겐 더욱 높고 푸른 계절이다. 한글날을 앞뒤로 나라 곳곳에서는 우리말 우리글 자랑하기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갖가지 기념행사를 할 때 보면, 참가자들 가운데 가슴에 꽃을 달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 꽃을 가리키는 우리말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은 ‘코사지’라 부르고, 또 ‘꽃사지’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 꽃의 명칭은 프랑스어인 ‘꼬르사쥬’에서 왔는데, 사전에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코르사주’가 표준말로 올라와 있다. 그러나 이제 기념식에서 가슴에 꽃을 다는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거의 정착되었기 때문에, 우리말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순화해서 쓰는 말이 ‘가슴꽃’이다. ‘코르사주’라는 말은 본래 여성들의 ..

눈꼽인가, 눈곱인가

자리가 높건 낮건 거짓말이 판치는 세상이다.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사람조차 제 몸 하나 편하자고 무서운 거짓말을 해댄다. 그러면서도 “거짓말은 눈꼽만큼도 못 한다.”고 한다. 이때 대개의 경우, ‘눈꼽’이라고 말하고 또 그렇게 적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눈꼽]으로 소리 나더라도 ‘눈곱’으로 적는 것이 표준말이다. ‘눈곱’은 ‘눈’과 ‘곱’의 합성어인데, ‘곱’은 동물의 기름을 가리키던 순 우리말로서, 아직도 제주 지방에서는 소의 기름을 ‘곱’이라고 한다. 이러한 ‘곱’의 의미가 확대되어, 눈에서 나오는 진득한 액체라는 뜻으로 ‘눈곱’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며, ‘눈’과 ‘곱’ 사이에 사이시옷이 있기 때문에 [눈꼽]으로 발음되는 것이다. 이처럼 표기에는 반영되지 않지만, 사이시옷이 생략된 합성어인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