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연대 415

어색한 표준말들

우리가 자주 쓰는 말 가운데는 어법에 맞지는 않지만 표준말로 고쳐 말하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는 말들이 더러 있다. “햇볕에 검게 그을은 피부”라고 하는데, 이것은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다. ‘검게 그을은’이 아니라 ‘검게 그은’이라고 해야 올바른 표현이 된다. ‘그을다’에 ‘-은’이 붙으면 ‘그을은’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런 경우에는 ‘ㄹ’ 소리가 탈락된다. 그래서 ‘낯설은 사람’이 아니라 ‘낯선 사람’이고, ‘길다’에 ‘-은’을 붙이면 ‘길은’이 아니라 ‘긴’이 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검게 그은 피부’는 왠지 어색하게 들린다. “나는 그녀가 물러나길 바래.”라는 말도 사실은 어법에 어긋난다. 바로잡으면 “나는 그녀가 물러나길 바라.” 하고 말해야 어법에 맞다. ‘바라다’는 말을 ‘바..

국정 농단

요즘 ‘국정 농단’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농단’은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쓰는 말이 아니므로 그 뜻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많은 이들은 이 말을 ‘국정 희롱’쯤으로 이해하고 있다. 어찌 보면 대통령 등 뒤에서 불쑥 나타난 여인네 하나가 나라의 정치를 희롱한 듯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농단’은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한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국정 농단’은 나라의 정치를 휘어잡고 온갖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해 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말이다. 그저 ‘국정 독차지’라고 했으면 누구나 쉽게 알아들었을 것이다. 국정을 독차지한 사람들과 그 경위를 밝혀내야 하는 검찰에게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것을 언론에서는 굳이 “애로 사항이 있을 것이다.”라고 표현한다. ‘애로’는 “좁고 험한 길”을 뜻하..

조용하세요!

영화관이나 공연장에서 “조용하세요!”란 말을 들을 수 있다. 교실에서, 또 친구들 모임에서도 “조용해!” 하고 말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말들은 모두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해!’, ‘○○하세요!’ 하고 명령형으로 쓸 수 있는 말은 동사일 때에만 가능하다. 그리고 본디는 ‘공부, 식사, 일’ 들처럼 명사인데, ‘-하다’를 붙이면 ‘공부하다’, ‘식사하다’, ‘일하다’와 같이 동사로 쓰이게 되는 낱말들도 명령형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조용’이란 말은 명사이고, 여기에 ‘-하다’를 붙여서 ‘조용하다’고 하면 동사가 아니라 형용사로 쓰이게 된다. 우리말 어법에서 형용사나 또는 ‘-하다’가 붙어서 형용사처럼 쓰이는 낱말들은 명령형으로 나타낼 수 없다. 이는 ‘아름답다’, ..

개판과 이판사판

나라가 난장판이다. 무질서하기는 난장판과 같은데, 여기에 옳지 못하고 난잡한 모습까지 보태지면 이를 개판이라고 한다. 어떻든 난장판이 수습되지 못해서 개판으로 치닫는, 그런 불행은 없어야 하겠다. 그 어떤 벼슬에 있었든, 밝은 대낮에 훤히 드러난 치부를 손바닥으로 가리고 온 국민을 상대로 ‘이판사판이니 한번 해보자!’는 추태를 보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난장판이나 개판에서의 ‘판’은 순 우리말이지만, ‘이판사판’이라고 할 때의 ‘판’(判)은 한자에서 온 말로 전혀 다른 뜻이다. ‘이판사판’은 ‘이판’과 ‘사판’이 합쳐진 합성어인데, ‘이판’과 ‘사판’은 모두 불교에서 쓰이고 있는 말이다. ‘이판’은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불도에 전념하는 일을 말하고, 그러한 일을 수행하는 스님을 ‘이판승’이라고 한다...

눈꼽인가, 눈곱인가

자리가 높건 낮건 거짓말이 판치는 세상이다.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사람조차 제 몸 하나 편하자고 무서운 거짓말을 해댄다. 그러면서도 “거짓말은 눈꼽만큼도 못 한다.”고 한다. 이때 대개의 경우, ‘눈꼽’이라고 말하고 또 그렇게 적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눈꼽]으로 소리 나더라도 ‘눈곱’으로 적는 것이 표준말이다. ‘눈곱’은 ‘눈’과 ‘곱’의 합성어인데, ‘곱’은 동물의 기름을 가리키던 순 우리말로서, 아직도 제주 지방에서는 소의 기름을 ‘곱’이라고 한다. 이러한 ‘곱’의 의미가 확대되어, 눈에서 나오는 진득한 액체라는 뜻으로 ‘눈곱’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며, ‘눈’과 ‘곱’ 사이에 사이시옷이 있기 때문에 [눈꼽]으로 발음되는 것이다. 이처럼 표기에는 반영되지 않지만, 사이시옷이 생략된 합성어인 경..

접지르다? 접질리다!

날씨가 추워져도 산에 오르는 이들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산에 눈이라도 내리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어서 올라갈 때나 내려올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다. 자칫하면 발목을 삘 수가 있다. 이런 경우에 “발목을 접질러 동료의 부축을 받아 내려왔다.”라든지, “산에서 발목을 접지르면 무척 위험해진다.”와 같이, ‘접지르다’란 말을 흔히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는 ‘접지르다’가 아니라 ‘접질리다’가 바른말이다. “발목을 접질려 동료의 부축을 받아 내려왔다.”, “산에서 발목을 접질리면 무척 위험해진다.”처럼 고쳐 써야 한다. ‘접질리다’는 “심한 충격으로 지나치게 접혀서 삔 지경에 이르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문장 안에서 ‘접질리어, 접질려, 접질리니’처럼 활용된다. 이 말의..

짐승의 어미와 새끼

요즘에야 ‘어미’라는 말을 ‘어미 소’, ‘어미 개’처럼 짐승에도 두루 쓰고 있지만, 옛날에는 사람의 ‘자식’과 짐승의 ‘새끼’를 구별해서 썼던 것처럼 ‘어미’도 사람에게만 썼다. 짐승의 어미는 사람과는 달리 ‘어이’라고 했다. 그래서 옛날에는 ‘어이 원숭이와 새끼 원숭이’, ‘어이 돼지와 새끼 돼지’라는 말을 썼다. ‘어이’는 지금도 우리 국어사전에 “짐승의 어미”라는 뜻으로 올라있는 표준말이다. 우리말에는 짐승의 새끼를 가리키는 말들이 꽤 발달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접미사 ‘아지’를 뒤에 붙여 쓰는 ‘강아지’, ‘송아지’, ‘망아지’ 같은 것들이다. 맨 처음으로 땅 위에 머리를 내민 식물의 싹에도 ‘아지’를 붙여서 ‘싹아지’라고 하는데, 강원도나 전라도 지방에서는 이것을 소리 나는 대로 ‘싸가지’..

뚝배기와 곱빼기

요즘 영재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다 보니, 이제 두세 살밖에 안 된 아기에게 한글은 물론 한자나 영어까지 가르치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교육학자들은 이렇게 지나친 조기교육에 대해 부정적이다. 갓 우리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두 살배기, 세 살배기에게 생소한 외국어를 가르치게 되면, 우리말조차 온전하게 습득하지 못하게 된다. 외국어 교육은 중학교부터 시행해도 늦지 않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체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말을 잘 하는 아이가 외국어도 빠르고 정확하게 배울 수 있다. 두 살이나 세 살 된 아기를 흔히 ‘두 살박이’, ‘세 살박이’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린아이의 나이를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서 ‘그 나이를 먹은 아이’라는 뜻을 갖는 말은 ‘-박이’가 아니라 ‘-배기’이다. ..

알은체하다

송년 모임이 잦은 때이다. 이맘때면 한 해 동안 벌여 온 일들을 매조지하고, 가까운 이들과 어울려 일상의 소소한 앙금들을 훌훌 털어버린다. 때로는 수십 년 동안 잊고 살았던 친구에게서 전혀 뜻밖의 송년 모임에 초대되는 경우도 있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다가 만난 친구들의 모임에 나가게 되면, 첫눈에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무심코 지나치다가, 아는 체 좀 하라고 타박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흔히 사람을 보면 인사하는 표정을 지으라는 뜻으로, “아는 체 좀 해라.” 또는 “아는 척 좀 해라.”처럼 말하고 있는데, 이 말들은 상황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이때에는 “알은체 좀 해라.” 또는 “알은척 좀 해라.”로 말해야 한다.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는 듯한 태도를 보일 때에나, 사람을 보고 ..

동문, 동창, 동기

‘동문’과 ‘동창’은 구별해서 쓰기가 까다로운 말이다. 본디 ‘동문’이란 말은 ‘동문생’의 준말인데, ‘같은 스승에게서 배운 제자들’을 뜻한다. 옛날에는 교육기관이 서당이나 서원 형태로서 한 스승 밑에 여러 문하생들이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함께 공부한 문하생’이라는 뜻으로 ‘동문생’이라 일컬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육기관인 학교에는 여러 선생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더 이상 한 스승 밑에서만 공부하는 일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같은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동창생’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곧 ‘동창생’이라 하면, 졸업한 때에 관계없이, 같은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 ‘동문생’을 줄여서 ‘동문’이라고 하는 것처럼, ‘동창생’도 줄여서 ‘동창’이라고 말한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