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연대 415

‘부치다’와 ‘붙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부치다’는 “어떤 물건을 상대에게 보내다.” 또는 “어떤 문제를 다른 기회로 넘겨 맡기다.”라고 풀이되어 있다. 반면에 ‘붙이다’는 “맞닿아 떨어지지 않게 하다.”라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부치다’는 무언가를 보내거나 맡긴다는 뜻이고, ‘붙이다’는 달라붙게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마당에 안건을 맡길 때에는 ‘토론에 부치다’라 해야 하고, 한쪽으로 상대를 몰아붙일 때에는 ‘밀어붙이다’라고 써야 한다. 그런데 막상 ‘붙이다’나 ‘부치다’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때에는 여러 곳에서 혼란을 느끼게 된다. 가령, “그는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그렇게 몰아부치지 마세요.”처럼, 많은 사람들이 ‘걷어부치다’, ‘몰아부치다’처럼 쓰고 있다. 또, “그녀는 내게 날카롭게 쏘..

기억과 생각의 차이

‘기억’이란 한자말을 흔히 “초등학교 때 친구가 기억난다.”라든지, “할아버지의 모습은 기억이 잘 안 난다.”와 같이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문장들에서는 ‘기억’이란 낱말이 바르게 사용된 것이 아니다. 이때에는 ‘기억’이 아니라 ‘생각’을 써서 “초등학교 때 친구가 생각난다.”, “할아버지의 모습은 생각이 잘 안 난다.”로 고쳐 써야 정확한 표현이 된다. 한자말 ‘기억’은 “어떤 일을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않음”이란 뜻이므로 ‘기억하다’라고는 쓸 수 있어도 ‘기억나다’라고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앞에서 예를 든 문장에서처럼 “도로 생각해낸다”는 뜻으로는 ‘생각난다’로 해야 문맥이 통하고 어색하지 않다. 곧 어떤 일이나 지식을 머리에 담아두는 일은 ‘기억’이라 하고, 기억된 것을 꺼내는 일은 ..

천정인가, 천장인가

물가가 안정되었다는 당국의 발표는 장바구니를 든 서민들에게는 언제나 공중에 뜬 허언이다. 특히 집값과 사교육비는 끝을 모르고 오르고 있다. 물가 인상폭이 큰 것을 두고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고 한다. 이때의 천정부지는 ‘천정을 알지 못하고’라는 뜻으로 쓴 말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천정’은 ‘天井’[텐죠오]라는 일본말의 한자음이다. 우리말은 ‘천정’이 아니라 ‘천장’이라 해야 맞다. ‘천정부지’를 굳어진 말로 보아 국어사전에 올려놓기는 하였지만, 당장 ‘천장부지’로 옮기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이라면 아예 우리말로 바꿔서 “물건 값이 천장을 모르고 올라간다.”고 쓰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집집마다 있는 ‘장롱’도 받아쓰기를 해보면 자주 틀리는 말이다. ‘장롱’의 ‘롱’을 ‘농’으로 잘못 쓰는 사례..

뾰루지와 민낯

졸린 눈꺼풀을 억지로 치켜들고 사무실에 앉아 일하다 보면, 요즘 같은 날씨엔 피부가 문제를 일으키기 쉽다. 간혹 얼굴에 뾰족하게 부스럼이 나서 신경이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부스럼을 흔히 ‘뽀드락지’라고 부른다. 하지만 ‘뽀드락지’는 표준말이 아니다. 특히 경상도 지방에서 ‘뽀드락지’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표준말은 ‘뾰루지’, 또는 ‘뾰두라지’이다. 얼굴에 뾰루지도 없고 여드름이나 기미도 없이 피부가 맑고 깨끗한 여성 분들은 특별히 화장을 하지 않아도 예뻐 보인다. 이처럼 화장을 하지 않은 여자의 얼굴을 가리킬 때 흔히 ‘맨얼굴’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맨얼굴’은 사전에도 없는, 잘못 쓰고 있는 말이다. 이럴 때 쓰는 우리말로, 사전에 ‘민낯’이란 말이 올라와 있다. ‘민낯’은 꾸미지..

눈그늘, 멋울림

얼마 전에 눈 밑 그늘 없애는 수술을 한 아내는 요즘 주변에서 얼굴이 밝아졌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싱글벙글거린다. 여성들이 나이가 들면서 신경을 많이 쓰게 되는 ‘다크서클’은 외국어에 상관없이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일 수 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는 ‘우리말 다듬기’ 사이트를 통해 이 말을 ‘눈그늘’로 다듬었다. 눈그늘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얼른 이해할 수 있는 용어라고 할 수 있으니, 이제 ‘다크서클’은 왔던 곳으로 되돌려 보내도 될 듯하다. 요즘 프로야구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경기장에서 경쾌한 음악에 맞춘 율동으로 관중의 응원을 이끌어가는 ‘치어리더’는 응원 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치어리더’는 (국립국어원에서) ‘흥돋움이’라는 말로 다듬었다. 또 여..

아닐 수 없다

말을 하다 보면 때로는 군더더기를 붙여 말하기도 하고, 서툰 표현으로 논리성이 갖추어지지 않을 때도 더러 있다. 언제 어느 때든 우리말을 효율적이고도 간명하게 사용하려는 노력이야말로 개인의 품격을 높이는 동시에 우리말의 오롯한 전승과 발전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요즘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서 무역 관련 단체들이 의견서를 내고 있는데, 이를 보도하는 기사 가운데 “단체의 주장이 담겨진 글에는…”과 같은 문장이 눈에 뜨인다. 그뿐 아니라 많은 기사와 공문서에서 “~가 담겨진”이란 표현을 볼 수 있다. ‘담다’를 피동형으로 쓰면 ‘담기다’가 되고, 관형형으로는 ‘담긴’이 된다. 그런데 ‘담기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서인지 이 말을 ‘담겨지다’, ‘담겨진’으로 쓰는 사람들이 많다...

붇다

긴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이 비가 또 다른 재해를 가져왔다. 중부지방에 내린 큰비는 가뭄을 이겨내며 어렵게 일궈낸 농작물을 휩쓸었고, 농심은 농작물과 함께 떠내려가 버렸다. 또, 계곡물이 넘쳐나며 산간마을 곳곳이 수해를 입었다고 한다. 이를 보도하는 기사를 보면, 비가 많이 와서 계곡물이 많아지는 모습을 “계곡물이 불기 시작했다.”로 나타내는 경우가 가끔 있다. ‘붇다’와 ‘불다’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곡물이 붇다’는 “계곡물이 붇기 시작했다.”로 말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체중이 불기 전에” 하는 표현도 “체중이 붇기 전에”로 해야 맞다. 이처럼 부피가 커지거나 분량이 늘어나는 것은, ‘풍선을 불다’라고 할 때의 ‘불다’와는 전혀 다른, ‘붇다’가 기본형이다. 이 ‘붇다’의 ‘..

야단법석

‘야단법석’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본디 “야외에서 크게 베푸는 설법의 자리”라는 뜻을 지닌 불교 용어라고 한다. ‘야단’은 ‘야외 강단’의 준말이고 ‘법석’은 ‘설법의 자리’라는 뜻이다. 이 말이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서,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떠들썩하고 부산스럽게 구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야단법석’이 널리 쓰이다 보니까 ‘난리 법석’이라든지 ‘요란 법석’이란 말들이 생겨났다. 야외 강단인 ‘야단’ 자리에 “소란하고 질서가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난리’를 바꿔 넣어서 ‘난리 법석’이라 하고, “시끄럽고 떠들썩하다”는 우리말 ‘요란’을 넣어서 ‘요란 법석’이라 쓰고 있다. 이 말들은 모두 “떠들썩하고 부산스럽게 구는 모양”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다만, ‘야단법석’은 사전 올..

미어지다, 엇걸리다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은 어떠한 말로도 나타내기 힘들다. “슬픔으로 가슴이 메어진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 말은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진다.”라고 해야 올바르다. ‘뭔가가 가득 차서 터질 듯하다’는 뜻의 말은 ‘메어지다’가 아니라 ‘미어지다’이다. 따라서 슬픔이나 고통이 가득 차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을 때에는 “가슴이 미어진다.”와 같이 ‘미어지다’를 써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메어지다’는 어떤 뜻으로 쓰일까? 이 말은 ‘메다’에 ‘-어지다’가 붙은 말로 분석할 수 있는데, ‘메다’는 “목이 메다”처럼 “어떤 감정이 북받쳐 목소리가 잘 나지 않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따라서 ‘메어지다’라고 하면 ‘감정이 북받쳐 목소리가 잘 나지 않게 된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

꺼려하다

방송을 보다 보면, ‘꺼려하다’란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소스가 고기 맛을 해칠까 꺼려하는”이라든가, “선배님 옆에 다가앉기를 꺼려하네요.” 같은 예들이 그러한 경우다. 이 말은 우리 귀에 무척 익어 있긴 하지만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본디 어떤 일이 자신에게 해가 될까봐 싫어할 때 ‘꺼리다’를 쓰는데, 이 말 자체가 동사이기 때문에 여기에 다시 동사를 만들어주는 ‘하다’를 붙여서 ‘꺼려하다’처럼 사용할 까닭은 없기 때문이다. ‘삼가다’를 ‘삼가하다’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경우인데, ‘나가다’를 ‘나가하다’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쉬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신문 기사에서도 우리말 표현이 잘못된 사례가 눈에 뜨인다. “부동산 대책 발표일을 8월 말로 연장했습니다.”라고 하는데,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