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순보 10

민족 계몽을 꿈꾼 ‘대한민보(大韓民報)’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대한제국(1897~1910) 시기는 근대의 희망과 아픔이 공존했던 시기였습니다. 침략적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시대에 우리나라로 침탈해 들어오는 외세를 막아내기 위해 무력투쟁(武力鬪爭)을 비롯한 여러 자강(自强)과 계몽운동(啓蒙運動)을 각계각층에서 펼쳤으나, 끝내는 그 빛을 보지 못하고 일제강점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에 근대 문물이 들어오던 시기는 외세의 위협이 날로 늘어나는 때였기 때문에, 이때의 근대 문물은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방편으로 쓰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신문(新聞)’입니다. 그렇게 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은 『한성순보(漢城旬報, 1883~1884)』였고, 그 후로 『한성주보(漢城週報, 1886~1888)』, 『독립신문(獨..

(얼레빗 4667호) 첫 근대식 인쇄소 박문국(博文局) 설립

1883년 오늘(월 17일) 한국 첫 근대식 인쇄소 ‘박문국(博文局)’이 설립되었습니다. 특히 박문국은 신문ㆍ잡지의 편찬과 인쇄를 맡아보던 출판기관으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산하기관인 동문학의 신문발행 업무를 담당하려고 설치한 것입니다. 초대총재는 이조판서, 한성부판윤을 지낸 민영목으로 한성부 남부 훈도방(薰陶坊) 저동의 영희전(永禧殿) 자리에 있었으며 1883년 10월 우리나라 첫 근대 신문 를 발간했습니다. ▲ 한성순보 제2호,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고종실록》에 "박문국을 설치한 지 몇 해가 되었는데 빚을 갚으려고 시골에서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폐단을 끼칠 뿐만 아니라 실효도 없으니 해당부서를 교섭아문(交涉衙門)에 넘겨 교섭아문으로 하여금 적당히 일을 처리하게 하라"는 기록이 ..

100년 전 우리말 풍경 - 신소설에 그려진 근대의 신문 독자들

20세기 초에 나온 신소설에는 당대인들의 일상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신문을 읽는 모습도 그중 하나이다. 신소설의 이야기 속에서 신문은 인물의 정체를 암시하기도 했고, 사건을 유발하거나 반전을 가져오는 극적 장치로 활용되기도 했다. 신문을 읽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최첨단 매체였던 신문이 개인의 일상을 파고든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1883년 『한성순보』의 창간을 필두로 1886년 『한성주보』, 1896년 『독립신문』, 1898년 『매일신문』, 『제국신문』, 『황성신문』, 1904년 『대한매일신보』, 1906년 『만세보』 등 다양한 신문이 간행되었다. ▲ 1898. 5. 7. 『독립신문』(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이 시기 신문은 대개 4면으로 발행되었는데, 1면에는 정치 문제..

(얼레빗 4520호) 국한문 섞어 쓴 첫 주간신문 ‘한성주보’ 창간

135년 전인 1886년 1월 25일 의 복간형식으로 박문국(博文局)에서 우리나라 첫 주간신문인 가 창간되었습니다. 이 신문은 창간사에서 밝히고 있듯이, 임금에게 충성하고 백성을 깨닫게 하는 것을 최대의 사명으로 삼았는데 1884년 4월 19일 김윤식(金允植)이 통리아문독판(統理衙門督辦, 조선 말기 외교 사무를 맡아보던 관아의 으뜸 벼슬)에 임명되면서 발간작업이 추진되었지요. ▲ 한성주보 제1호(왼쪽), 한성주보 1886년 2월 22일자 세창양행 광고 편집체재는 1단제로서 1면 16행, 1행 40자, 1호 16면 또는 18면씩 발행되었는데 규격은 세로 22.5㎝, 가로 16.5㎝였습니다. 특히 가 한자만을 쓴 데 반하여 이 신문은 최초로 국한문을 섞어 썼고, 내용에 따라 순한글 또는 순한문만을 쓰기도 하..

문장 부호 전문 (8) - 13. 겹낫표와 겹화살괄호, 14. 홑낫표와 홑화살괄호

13. 겹낫표(『 』)와 겹화살괄호(≪ ≫) 책의 제목이나 신문 이름 등을 나타낼 때 쓴다. (예)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신문은 1896년에 창간된 『독립신문』이다. (예) 『훈민정음』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예) ≪한성순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이다. (예..

(얼레빗 4198호) 136년 전 오늘 첫 신문 ‘한성순보’ 창간

136년 전인 1883년(고종 20) 오늘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 <한성순보(漢城旬報)>가 창간된 날입니다. 한성순보는 서울 저동(지금의 을지로2가)의 통리아문(統理衙門) 박문국(博文局)에서 월 3회 발행한 순보(열흘 간격으로 발행)였지요. 1882년 박영효(朴泳孝) 일행이 수신사(조선 말 ..

(얼레빗 4065호) 첫 서양식병원 광혜원, 세브란스병원 된 내력

한국문화편지 4065호 (2019년 04월 26일 발행) 첫 서양식병원 광혜원, 세브란스병원 된 내력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65][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876년 문호개방 이후 고종의 대한제국은 근대화 작업에 착수하였고 이때 의료근대화도 구상하였습니다. 1881년 일본에 파견한 조사시찰단(朝士..

10월 31일 - 호외요, 호외!《한성순보》가 나왔습니다

한성순보 옛날엔 방물장수들이 마을에 오면 인기가 좋았지요. 온갖 세상이야기를 전해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상 소식에 목말라 하던 이들을 위해 드디어 조선 최초로 신문이 발행되었습니다. 바로 1883년 10월 31일 처음 발행된 열흘에 한 번 나오는 《한성순보(漢城旬報)》가 그..

9월 17일 - <매일신보> 여기자 모집, 유부녀만 뽑아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신문은 1882년 발행된 관보 《한성순보》였으며, 최초의 민간신문은 《독립신문》이었는데 그때까지 기자들은 모두 남자들뿐이었습니다. 그 뒤 일본의 조선총독부가 1910년 창간한 &lt;매일신보&gt;는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 식민지화를 선동하는 신문이었지요. 그 《..

8월 17일 - 한국 최초의 근대식 인쇄소 박문국이 문을 열었습니다

박문국(博文局)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인쇄소로 1883년 설립하여 신문, 잡지의 편찬과 인쇄를 맡아보던 출판기관입니다. 특히 박문국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산하기관인 동문학의 신문발행 업무를 담당하려고 설치한 것입니다. 초대총재는 이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지냈던 민영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