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 4

용인 서리 고려백자 가마터에서 왕실 제기 다량 출토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의 허가를 받아 용인시(시장 백군기)와 (재)서경문화재연구원(원장 임영호)이 조사한 용인 서리 고려백자 가마터(사적)에서 고려 초기의 백자 생산관련 시설과 왕실 제기가 출토되었다. * 용인 서리 고려백자 가마터: 1980년대 호암미술관이 고려 시대의 자기 가마터를 조사하여 사적으로 지정된 유적(1989.1.14.) * 제기(祭器): 제례에 사용되는 그릇과 관련 도구들 * 발굴현장: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 335-1번지 일원 ▲ 조사지역 내 건물지와 제기가 매납된 유구 전경 ▲ 보와 궤가 묻힌 유구 전경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는 고려 초부터 백자를 생산했던 가마터로 중국의 자기제작 기술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한 몇 안 되는 대표적인 가마 가운데 하나다. 1984년부터 3..

일제강점기 전형필이라면 광복 뒤에는 윤장섭

일제강점기 전형필이라면 광복 뒤에는 윤장섭 우리는 일제강점기 온 재산을 털어서 나라 밖으로 팔려나가는 문화재를 수집한 간송 전형필을 압니다. 그는 문화재를 지키는 것으로 또 다른 독립운동을 했지요.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전형필이 있다면 광복 뒤에는 윤장섭이 있습니다. 윤장섭은 개성 출신으로 6.25전쟁 이후 쏟아져 나온 많은 문화재가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사명감과 열정을 가지고 우리의 문화재를 수집·보존하기 시작합니다. 그 뒤에는 당시 미술사학계의 3대 대가인 최순우, 황수영, 진홍섭 같은 개성 선배들이 있었지요. 1974년 1월 국립중앙박물관장 최순우에게 편지 한 장과 도자기 몇 점이 배달되었습니다. “품평 앙망하나이다. ① 백자상감모란문병 200만 원 ② 분청사기철화엽문병 250..

용머리를 올린 당간을 보셨나요?

용머리를 올린 당간을 보셨나요? 용龍은 오랜 세월 우리 겨레의 문화 속에 자리한 상상의 동물입니다. 용 모습이 새겨진 귀한 유물로 ‘금동당간용두金銅幢竿龍頭’가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부리부리한 눈과 쑥 내민 윗입술과 송곳니, 쩍 벌린 입 안쪽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을 느끼게 합니다. 목을 앞으로 쑥 내밀어 휘어진 역동적인 몸통에는 두 가닥의 선으로 비늘을 촘촘히 오목새김(음각)했습니다. 금동당간용두는 1977년 경상북도 풍기에서 발견된 것으로 용의 입을 가로지른 철봉에는 실패 모양의 도르래가 끼워져 있습니다. 도르래는 그 앞의 여의주에 가려 밖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었으며, 턱 밑은 뚫려서 쇠줄을 도르래에 걸 수 있지요. 지금은 도르래 부분이 심하게 ..

(얼레빗 4486호) 김홍도의 천재성에 날개를 달아준 강세황

우리는 조선시대 으뜸 화원으로 단원 김홍도(金弘道)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원은 풍속화를 독창적으로 담아낸 천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그런데 그가 그렇게 뛰어난 화원이 된 데에는 표암 강세황(姜世晃)의 공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단원이 7~8살 되던 무렵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표암은 그를 아끼며 글과 그림을 가르친 뒤 도화서에 천거하여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합니다. 심지어 표암은 호랑이 그림의 표준작이라 평가를 받는 등의 그림을 함께 그렸지요. 표암은 오른쪽 위에 ‘표암화송(豹菴畵松)’이라 적었고, 단원은 왼쪽 아래에 그가 40대 이전에 주로 사용하던 호 ‘사능(士能)’을 적어 놓았으며, 소나무는 표암이, 호랑이는 단원이 그렸지요. 그런데 이 작품은 윗부분에 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