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 2073

찰나의 우리말 - '외국인'은 누구인가?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는 제프리 홀리데이라는 미국 국적을 가진 교수님이 계신다. 서로 바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학기에 한두 번 정도는 시간을 내서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그간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연구 얘기부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한번은 한국어의 ‘외국인’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홀리데이 교수는 한국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이 ‘외국인’이라는 단어가 흥미롭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외국인’이라는 단어는 세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란다. 첫째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지 않은 사람, 둘째는 한민족이 아닌 사람, 셋째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

한글날이 다시 공휴일이 되기까지

매년 10월 9일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는 한글날이다.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480주년이 되던 1926년, 조선어연구회는 세종실록에 기록된 훈민정음 반포 날짜를 근거로 하여 음력 9월 29일을 기념일로 정했다. 당시의 이름은 ‘가갸날’이었다. 이듬해인 1927년 가갸날은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1940년에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내용을 토대로, 한글날은 마침내 10월 9일로 확정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거쳐온 한글날은 올해 576돌을 맞았다. 한글날은 1949년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당시 한글날의 지위는 국경일이 아닌 기념일이었다. 1990년,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됨에 따라 한글날이 국군의 날과 함께 법정 공휴일에서마저 제외되었다. 공휴일이 너무 ..

전 세계를 매료한 '우영우'와 '헤어질 결심', 비결은 말맛 살린 번역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콘텐츠의 열풍이 거세다.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북미, 유럽, 남미 등에서도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일례로 영화 이 2019년에 아카데미상을, 드라마 이 2021년에 에미상을 받으며 한국 콘텐츠의 새 역사를 썼다. 이처럼 한국이 만들어내는 작품의 위상이 점차 높아지면서, 이제 한국어는 다른 나라의 언어로 많이 번역되는 언어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한국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어떻게 전 세계인을 매료할 수 있었을까? 한 가지 비결은 한국어 말맛을 살리는 번역이었다. 작품의 고유한 분위기와 대사의 어감을 해치지 않고 온전히 전달하는 자막이 있을 때, 타국의 시청자들도 한국 작품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최근 세계적인 흥행을 거둔 두 작품인 이엔에이(EN..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 - 가치와 값어치, 같은 듯 다른 쓰임새

훈민정음이 세상에 반포된 지 어느덧 57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훈민정음은 현존하는 지구상의 문자 중에서 유일하게 창제 연월일과 창제한 인물이 밝혀진 문자이다. 창제일과 창제자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덕분이다. 유네스코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도 현존하는 유일한 문자 해설서로서 중요한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가치’의 일반적 의미는 ‘쓸모’ 또는 ‘유용성’이다. 어떤 사물이 쓸모를 잃는 순간 가치도 소멸되고 어떤 대상의 유용성이 부정되는 순간 가치도 상실된다. 곧 가치의 기본 의미는 ‘사물이 어떤 목적에 쓰일 데가 있는 성질이나 정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세상에는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 있다. 어떤 용도로 쓰이지 않을지라도, 혹은 어떤 목적..

‘마이크로투어리즘’은 ‘근거리 여행’으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 이하 문체부)와 국립국어원(원장 장소원, 이하 국어원)은 ‘마이크로투어리즘’을 대체할 쉬운 우리말로 ‘근거리 여행’을 선정했다. ‘마이크로투어리즘’은 자신의 근거지와 가까운 지역을 여행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문체부는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하나로 국어원과 함께 외국어 새말 대체어 제공 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문체부와 국어원은 지난 10월 5일(수)에 열린 새말모임*을 통해 제안된 의견을 바탕으로 의미의 적절성과 활용성 등을 다각으로 검토해 ‘마이크로투어리즘’의 대체어로 ‘근거리 여행’을 선정했다. * 새말모임: 어려운 외래 용어가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다듬은 말을 제공하기 위해 국어 유관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 이에 대해 문체부는..

'한글 점자의 날'을 아시나요?

10월 9일은 한글날, 11월 4일은 한글 점자의 날이다. ‘한글 점자의 날’은 시각장애인의 점자 사용 권리를 신장하고 점자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제정된 날로, 매년 11월 4일이 바로 그 기념일이다. 점자법 제15조에 따르면 한글 점자의 날이 속한 주간을 ‘한글 점자 주간’이라고 하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와 관련해 각종 행사를 실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11월 4일은 현재 사용하는 한글 점자의 원형인 ‘훈맹정음’을 발표한 날을 기념하여 정해졌다. 그전까지는 법정 기념일이 아니었던 ‘한글 점자의 날’이 2020년 12월에 ‘점자법’이 개정된 이후부터 법정 기념일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올해 ‘한글 점자의 날’은 96돌을 맞이했으며 법정 기념일이 된 지는 두 해째다. 하지만 ..

우리말 탐구 - 습관이 무서워! 알면서도 쓰는 겹말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 ‘겹말’이라는 것이 있다. 겹말은 같은 뜻의 말이 겹쳐서 된 말을 뜻한다. 대부분의 겹말은 한자어나 외국어에 우리말을 덧붙인 표현을 습관적으로 쓰다가 굳어진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역전 앞’이 있다. ‘역전(驛前) 앞’은 ‘역의 앞쪽’을 뜻하는 ‘역전’에 ‘앞’이라는 단어가 붙어 ‘앞쪽’의 뜻이 두 번이나 나타나는 겹말이다. 현재 ‘역전’은 ‘역 앞’으로 순화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역전 앞’이라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죽 혁대’ 역시 ‘가죽으로 만든 띠’를 뜻하는 ‘혁대’와 재질인 ‘가죽’이 합쳐진 말로, ‘가죽’이라는 뜻이 중복된 겹말이다. ‘철교 다리’는 ‘철로 만든 다리’에 다시 ‘다리’를 더한 겹말이고, 거리 미관을 위해 길을 따라 줄지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