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배우자 2096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천 냥 빚을 갚을 말

‘말이 고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 온다’는 옛말이 있다. 말의 가치를 한껏 치켜세우는 표현이다. 그런 말 한마디를 두고 천 냥 빚도 갚을 정도라고 매긴다. 사극에서 흔히 듣던 ‘냥’이라 익숙히 아는 말 같지만, 사실 한 냥의 가치는 상당히 높다. 한 푼의 열 배가 한 돈이고, 한 돈의 열 배가 한 냥이다. 만약 국밥 한 그릇이 한 푼이라면, 한 냥으로는 국밥 백 그릇을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천 냥이란 십만 푼으로, 오늘날 물가로 따지면 수천만 원에서 1억 가까이 된다. 그런 빚을 갚을 수 있는 말이라면 어떻게든 한번 해 볼만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짚어 볼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남을 움직일 만큼 힘 있는 말이란 듣기 좋은 말이다. 비지 사러 온 사람에게 두부를 사게 하고, 큰 빚을 면제해 줄 정도..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말을 전하는교환학생 우리 말 우리 글 교육 동아리 ‘이화한글아씨’

최근 코로나19 방역 완화로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 학생들이 학교 곳곳에 자주 보인다. 외국인 학생들은 한국어를 공부하거나 한류에 관한 관심으로 한국 문화를 더 알고자 하는 등 다양한 이유로 한국에 일정 기간 머무른다. 이화여자대학교에는 낯선 타국에서 적응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을 돕는 한국어 교육 동아리가 있다. ‘이화한글아씨’ 동아리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고, 나아가 한국 문화까지 알리는 활동을 한다. ‘이화한글아씨’ 동아리 부원들을 직접 만나보았다. 인터뷰는 11월 1일, 이화여자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진행되었다. 인터뷰에는 이화한글아씨 김가인(22학번, 사진에서 왼쪽) 씨, 최현지(19학번, 사진에서 중앙) 씨, 조서영(19학번, 사진에서 오른쪽) 씨가 참여했다. 이화한글아..

우리말 탐구 - 내 피부를 태운 건 ‘햇빛’? ‘햇볕’? ‘햇살’?

한여름 구릿빛으로 그을린 피부는 피서의 훈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내 피부를 검게 태운 건 햇빛일까? 햇볕일까? 햇살일까? ‘햇빛’, ‘햇볕’, ‘햇살’은 모두 해와 관련된 말이긴 하지만 그 뜻과 쓰임이 조금씩 다르다. ‘햇빛’은 ‘해’와 ‘빛’이 합쳐진 말로 ‘해의 빛’을 뜻한다. ‘빛’은 시각 신경을 자극하여 물체를 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전자기파다. 따라서 ‘햇빛’이라는 말은 ‘햇빛이 비치다’, ‘햇빛을 가리다’, ‘이슬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인다’와 같이 시각적으로 표현할 때 쓰인다. 이외에 ‘햇빛’은 ‘살아생전에 그의 소설은 햇빛을 보지 못하고 묻히고 말았다.’와 같이 세상에 알려져 칭송받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햇볕..

사귐과 관련된 우리말 - 너나들이, 섬서하다

너나들이, 섬서하다 무슨 뜻일까? 우리는 비밀이 없을 정도로 너나들이하는 사이입니다. 너나들이: 서로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허물없이 말을 건네는 사이 고향에서 떠나 지내다 보니 동창들과 섬서해졌어. 섬서하다: 지내는 사이가 서먹서먹하다 우리는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느새 둘도 없는 짝지가 되었다. 짝지: 뜻이 맞거나 매우 친한 사람을 이르는 말 한눈에 보자! '사귐'과 관련된 우리말! 구순하다: 서로 사귀거나 지내는 데 사이가 좋아 화목하다 너나들이: 서로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허물없이 말을 건네는 사이 두발걸이: 양쪽에 모두 관계를 가지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설면하다: 자주 만나지 못해 낯이 좀 설다 섬서하다: 지내는 사이가 서먹서먹하다 알음알음: 여러 사람을 통해 서로 알게 된 사이 옴..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 - 점자와 묵자

우리가 알아야 할 문자, 훈맹정음 훈민정음이라 하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름이자 문자일 것이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것으로 오늘날 한글이 되었다. 그렇다면 훈맹정음은 어떠한가? 훈맹정음은 누구로부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훈맹정음은 송암 박두성 선생이 시각 장애인을 위해 1923년 발표한 것으로, 현재 쓰고 있는 한글 점자의 원형이다. ‘훈맹정음’은 자음과 모음, 숫자도 다 들어가 있는 서로 다른 예순세 개의 한글 점자로, 배우기 쉽고, 점 수효가 적고, 서로 헷갈리지 않아야 한다는 세 가지 원칙에 기초하여 만들어졌다. 송암 박두성 선생이 쓴 《맹사일지》에는 “점자는 어려운 것이 아니니 배우고 알기는 5분이면 족하고 읽기는 반나절에 지나지 않으며 4, 5일만 연습하면 능숙하게 쓰고 유창하게 읽을 ..

[알기 쉬운 우리 새말] 마이크로 투어리즘? 근거리 여행

이전에 가끔 쓰였던 용어가 시기적 상황 때문에 갑자기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마이크로 투어리즘’(micro tourism) 역시 그렇다. 코로나19 때문에 급부상한 용어다. ‘마이크로 투어리즘’은 사람이 많이 몰리는 대형 관광지를 찾는 ‘매크로(macro) 투어리즘’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가족과 친지 등 가까운 사람들이 소규모 단위로 멀지 않은 곳의 숨은 명소를 찾는 방식의 여행을 일컫는다. 바이러스 전파를 막으려고 외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나라가 늘어나는 등 외국 여행이 위축되고, 사람들 스스로 많은 인파가 몰리는 유명 여행지 방문을 꺼리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뜬’ 여행 방식이다. 비교적 가깝고 좁은 범위의 지역을 소규모 인원으로 여행하다 보니 ‘주마간산’식 관광이 아니..

[알기 쉬운 우리 새말] 이중생활도, 두 집 살림도 아닌 두 지역살이

1990년대에 유럽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 국내에 개봉됐다. 이렌 자코브가 주연한 이 영화는 두 개의 도시에 떨어져 살며 만나 본 적도 없는 두 여성이 같은 이름과 얼굴로, 서로의 존재를 어렴풋이나마 의식하고 감정을 공유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원제 중 ‘더블 라이프’(Double Life)를 한국어로 ‘이중생활’이라 번역한 것이 도마에 올랐다. 사전상 뜻은 맞되 말의 사회적 쓰임이라는 맥락에서 봤을 때 오해의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말모임에서 검토한 것은 ‘더블 라이프’가 아닌 ‘듀얼 라이프’(dual life)였다. 역시 오해를 주기 십상인 용어다. 영어 사전에서 이 용어를 찾아보면 ‘이중생활’이라고 번역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중생활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이상의 직업 혹은 역..

궁금한우리말 - 맛의 말, 말의 맛, ‘비빈밥’과 ‘덧밥’

‘문법 나치(Grammar Nazi)’를 우리말로 뭐라 바꿔야 할지 모르겠으나 누구나 이런 사람이 되어 본, 혹은 이런 사람한테 당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굳이 문법이 아니더라도 맞춤법이 틀린 표기를 보면 빨간색으로 고쳐 주고 싶다. 반대로 사소한 맞춤법을 틀려 지적을 받으면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말과 글에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식당에 가서도 본의 아니게 문법 나치 혹은 맞춤법 나치의 역할을 하게 된다. ‘찌게’를 보면 ‘찌개’로 고쳐 주고 싶고, ‘곰탕’을 영문으로 쓴답시고 ‘Bear Soup’이라고 써 놓은 것을 보면 주인장을 불러내 따지고 싶다. 그런데 어느 허름한 식당의 비빔밥과 덮밥 표기를 보았을 때 정말로 주인장을 흘깃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존경의 눈으로……. 1997년 옌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