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에 대한 마음을 시조로 읊조렸던 성삼문은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지금도 널리 추앙받고 있다.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훈민정음의 보급에도 애쓴 성삼문,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 몸이 주거 가셔 무어시 될꼬 하니 봉래산(蓬萊山) 제일봉(第一峯)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야 이셔,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 - 성삼문 21세의 젊은 학사 성삼문 성삼문은 조선의 수재였다. 1435년 생원시 합격, 1438년 식년문과 급제, 1447년 문과중시 장원급제…, 성삼문의 화려한 이력이 이를 말해 준다. 세종대왕은 일찌감치 성삼문을 조선을 이끌어 갈 인재로 점찍고 1438년 21세의 성삼문을 집현전 학사로 발탁했다. 그리하여 성삼문은 세종대왕을 보필하며 신숙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