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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초상화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걸작 보물 제1483호 이채초상(李采肖像)을 보셨나요? 1802년에 비단 바탕에 채색한 그림으로 세로 99.2㎝, 가로 58㎝의 크기이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초상화는 이채가 높은 선비들이 입던 무색 심의(深衣)를 입고 중층 정자관(程子冠,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쓰던 평상시 집에서 쓰던 관)을 쓴 뒤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반신상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초상화는 극사실화(極寫實畵)와 전신사조로 그렸지요. 먼저 이 초상에서 이채 눈매를 보면 홍채까지 정밀하게 묘사되어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것은 물론 왼쪽 눈썹 아래에는 노인성 검버섯이 선명하게 보이며, 눈꼬리 아래에는 노인성 지방종까지 보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살을 파고 나온 수염을 하나하나 세밀히 그렸으며, 오방색 술띠를 한 올 한 올까지 거의 ‘죽기살기’로 그렸습니다.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용서하지 않은 그야말로 사실주의 극치지요.
그런가 하면 조선 초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전신사조(傳神寫照)입니다. 전신사조는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의 겉모습 묘사에만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의 내면세계까지 담아내는 것을 말하지요. 사람에게서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에 담긴 정신세계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초상화에서도 이채의 꼿꼿한 선비다움이 그대로 잘 드러나 있는 있지요. 사대부의 나라이자 성리학의 나라였던 조선시대는 이렇게 초상화 하나에도 당시의 철학이 철저히 배어 있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초상화를 볼 때는 그 인물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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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속풀이 2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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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숙 명창의 감동적인 선물, <정선아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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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어 무계원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 이야기를 계속한다. 무계원이란 인왕산 자락에 자리 잡은 옛 전통가옥으로 현재는 이곳에서 종로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종로구청이 후원하는 -해설이 있는 국악공연- <풍류산방>을 열고 있다.
지난주 12월 5일, 첫 음악회에서는 남창가곡과 여창가곡, 시조와 가사 등의 정가류 음악을 올려 참석자들로부터 대단한 호응을 받았다. 남창에는 박문규, 여창은 황숙경 명창이 출연하였는데, 이들의 열창에 산장의 음악은 점점 더 절정으로 치달았고, 특히 전통한옥에서 음향기기 없이 감상할 수 있었던 정가류의 음악은 너무도 맑고 깨끗하게 전달되어 진정 아름다운 노래임을 알게 해 주었다.
이 곳, 무계원은 무계정사(武溪精舍), 또는 무계정사지에서 따온 이름이며 세종의 셋째아들인 안평대군의 집터로 자연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무릉도원(桃園)과 흡사해서 안견이라는 화가에게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를 그리게 했다는 이야기, 무계원 건물은 과거 종로구 익선동에 있었던 오진암의 건물 자재를 그대로 활용했는데, 이 전통 가옥은 1910년대 초에 지어진 대표적인 상업용 도시한옥으로써 그 희소성과 함께 보존가치가 뛰어난 건축물이어서 그 자재를 활용하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현재는 전통문화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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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12월 12일 두 번째 토요일에는 경기소리의 최영숙 명창과 김미나 명창의 판소리가 소개되어 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최영숙은 흔히 잡가(雜歌)라고 칭하는 좌창(坐唱)중에서 <소춘향가>와 <장기타령>을 불러주었다. 단정하게 앉아서 긴 호흡으로 유유하게 불러나가는 경기지방의 대표적인 노래로 맑고 깨끗한 음색이 일품이다.
지난주에 들었던 가사와 비슷하나 노랫말이나 떠는 소리 등 음악적 표현의 적극성 정도가 차이를 보이는 노래이다. 보통의 빠르기로 부르며 장단은 느린 6박의 도드리장단으로 진행된다. 이처럼 중인그룹에서 즐겨 부르던 점잖은 긴소리를 아직도 ‘잡가’라 부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1910년~1920년대에 나온 여러 잡가집, 예를 들면 《증보신구잡가(增補新舊雜歌)》를 비롯하여 《고금잡가편(古今雜歌編)》, 《무쌍신구잡가(無雙新舊雜歌)》, 《신구유행잡가(新舊流行雜歌)》, 《증보신구시행잡가(增補新舊時行雜歌)》와 같은 동 시대의 잡가집을 보면 대부분이 가곡, 가사, 시조를 비롯하여, 민속가인 초한가를 비롯한 서도소리나 육자배기를 비롯한 남도소리, 유산가를 비롯한 경기 잡가와 민요, 그리고 단가나 회심곡, <산타령> 계열의 음악 등, 그야말로 성악의 전 장르를 망라한 노래들이 잡거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특정 장르의 노래만이 아닌, 즉 여러 장르의 노래들을 종합적으로 싣고 있다는 의미에서 책의 이름도 ‘여러 노래의 모음집’이란 뜻의 잡가(雜歌)로 했던 것이다. 당시 대중들이 즐겨 부르며 유행시켰던 노래를 아우르는 이름이었던 것이다. 서울 경기지방의 좌창을, 또는 긴 호흡으로 느짓하게 불러나가는 긴소리를 잡가로 호칭하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잡가란 뭔가 섞여 있어서 순수하지 않은, 또는 잡스런 의미를 담고 있기에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소춘향가> 이외에도 집장가(執杖歌), 형장가(刑杖歌), 십장가(十杖歌)등이 판소리 사설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소춘향가의 노랫말은“ 춘향의 거동봐라. 왼 손으로 일광을 가리고, 오른손 높이 들어 저 건너 죽림(竹林)보인다. 대 심어 울하고 솔 심어 정자라. 동편에 연정이요 서편에 우물이라”로 시작해서“우는 눈물 받아내면 배도 타고 가련마는 지척동방천리로다. 바라를 보니 눈에 암암.”이라며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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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소춘향가에 이어 최영숙 명창이 부른 노래는 신명나는 <장기타령>이었다. 이 노래는 민요조 가요와 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으며 서서 부르되 흥청거리며 빠른 장단에 맞추어 경쾌하게 부르기 때문에 경기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 잘 부르고 있는 노래이다. 현재 전해지는 노래는 5절이나 처음부터 장기에 관한 노랫말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시작부분의 노랫말은“ 날아든다 떠든다. 오호로 날아든다. 범려는 간 곳 없고, 백빈주 갈매기는 홍요안으로 날아들고 한산사 찬 바람에 객선이 두둥둥 에화 날아 지화자. 아하에--에헤요 아하아 아하아 얼삼마 두둥둥 내 사랑이로다. 에---”로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제5절에 가서야 장기를 만들어 한판 두어보자는 재미있는 내용이 나오고 있다. “만첩청산 쑥 들어가서 호양목 한 가지 찍었구나. 서른 두짝 장기 만들어 장기 한판 두어보자. 한수 한(漢)자는 유황숙이요, 초나라 초(楚)자는 조맹덕이라. 이 차(車), 저 차 관운장이요, 이 포(包), 저 포 여포로다. 코끼리 상(象)자 조자룡이요. 말 마(馬)자 마초로다. 양 사(士)로 모사를 삼고 오(五)졸(卒)로 군졸을 삼아 양진이 상접하니 적벽대전이 예로구나. 조조가 대패하여 화용도로 도망을 할 제 관운장의 후덕으로 조맹덕이 살아만 가노라 에-”
장기에 나오는 한과 초가 각각 유황숙과 조맹덕이고, 차는 관운장, 포는 여포, 상은 조자룡, 말은 마초, 양사와 5졸이 서로 있어서 재미있게 전개되는 장기에서의 싸움이 연상되며, 적벽가 끝 부분에 나오는 적벽대전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아 재미를 더했다.
그리고 <아리랑>과 <정선아리랑>, <한오백년>이나 <강원도아리랑> 등에서는 강원도 지방의 독특한 음률과 장단, 호흡을 최영숙의 목소리로 감상하였다. 중간 중간에 동석해 있는 감상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후렴을 함께 부르기도 하면서 모두가 하나 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날 가장 감동적인 선물은 최영숙이 부르는 정선 아리랑이었다. 강원도의 높은 산 위를 구름이 하염없이 흘러가듯, 또는 깊은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이 격정을 일으키듯 최영숙이 불러주는 가락과 가락의 연결은 그 흐름이 너무도 유연하고 장쾌하여 방안의 감상자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가 안내하는 음의 세계로 인도되었던 것이다. 특히 낮은 선율로 조용히 이어가다가 강력하게 치고 올라가는 고음의 연결은 최영숙의 공력이 그대로 녹아있는 멋진 표현으로 답답한 가슴이 시원해지는 통쾌한 느낌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모두가 그녀의 소리에 압도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날, 최영숙 명창의 목소리는 너무도 곱고 맑으며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느낌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것은 음향기기 없이 바로 전통의 한옥이라는 공간에서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겐 목소리보다 더 예쁘고 더 아름답고 귀한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국악계에 퍼져있다. 바로 경기소리를 아끼고, 선생을 지극정성으로 받들며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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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한 범 /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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