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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2일 은 동지.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는 날. 이 날은 팥죽(동지죽)을 끓여 조상에 바치는 한편 집안의 잡귀를 쫓는 날이기도 한데... 동지가 지나면 이해도 거의 보내는 김이 된다는 예로부터의 관념이 있기는 하나 올해는 평년보다 일찍든 애동지이기에 음력의 丁유년은 아직도 두 달이나 남아 있는 셈. 어느덧 연말로 박두해오자 거리에는 <토정비결>로 새해의 신수를 가려보는 이도 한두 사람씩 눈에 띄우기 시작하고...”
동아일보 1957년 12월 22일 기사입니다. 올해도 내일로 벌써 동지가 다가왔습니다. 동지(冬至)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한순에 들면 노동지라고 하는데 올해 동지는 1957년과 달리 음력 11월 12일로 중순에 들어서 중동지입니다. 중동지, 노동지는 팥죽을 쑤어 먹고, 애동지면 아이에게 좋지 않다고 하여 팥죽 대신 떡을 해먹었지요.
그리고 지금은 거의 잊힌 풍속이지만 예전엔 위 동아일보 기사처럼 이때쯤이면 《토정비결(土亭秘訣)》로 새해의 신수를 봤었지요. 《토정비결》을 쓴 이지함(1517~1578)은 가난한 백성을 위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장사하는 법과 생산 기술을 가르치는 등 자급자족 능력을 기르도록 했습니다. 또 가난한 백성들에게 자신의 재물을 나눠주기도 했으며, 무인도에 들어가 박 수만 개를 수확해 바가지를 만든 다음 곡물 수천 석과 바꾸어 가난한 사람을 도왔습니다. 그는 명문가의 후손임에도 피지배층의 편에 서서 수공업, 상업, 수산업 등에 종사한 큰 인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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