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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4절기의 스물두째 이며 명절로 지내기도 했던 동지(冬至)입니다. 이날부터 해가 길어지기 때문에 해가 부활한다는 의미로 설 다음 가는 날이라 하여 “작은 설” 또는 “아세(亞歲)”라 하였습니다. 특히 이날은 팥죽을 만들어 사당에 올려 동지고사(冬至告祀)를 지내고, 귀신을 쫓기 위하여 각 방과 장독, 헛간 같은 집안의 여러 곳에 놓아두거나 벽 따위에 뿌린 다음 식은 뒤 식구들이 모여서 먹지요. 이것은 팥의 붉은색이 양색(陽色)이어서 음귀를 쫓는다고 본 것으로 정월대보름의 오곡밥, 아들을 낳았을 때와 간장독에 두르는 금줄의 붉은 고추, 중양절의 산수유 열매를 머리에 꽂는 것도 역시 같은 믿음입니다.
동지의 다른 세시풍속에는 부채를 선물하는 단오와 함께 하는 “하선동력(夏扇冬曆)”이란 풍속도 있었습니다. 단오는 다가오는 더위를 잘 견디라는 의미로 부채를, 동지에는 새해를 잘 계획하라는 의미로 달력을 선물했던 것이지요. 또 동지에는 며느리들이 시어머니나 시할머니에게 버선을 지어 선물하는 “동지헌말(冬至獻襪)”이란 아름다운 풍속도 있었습니다. 이날 새 버선을 신고 길어지는 해그림자를 밝으면 수명이 길어진다고도 믿었지요.
그뿐만 아니라 예부터 동짓날부터 섣달 그믐날까지는 영육간의 모든 빚을 갚고 새 기분으로 설날을 맞았지요. 하지만, 빚을 갚지 못했어도 절대 독촉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또 일가친척이나 이웃 간에 불화가 있었으면 이날 서로 마음을 열어 풀었습니다. 불편한 이웃과 웃는 날인 6월 유두와 함께 동지는 우리 겨레에게 참으로 아름다운 날입니다. 오늘 가까운 절에 가면 팥죽을 쑤어 사람들에게 보시를 합니다. 동지는 나만 우리 식구만 팥죽을 먹는 날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나누는 날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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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악속풀이 2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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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원을 감동시킨 알심의 소리꾼, 김미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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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어 무계원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 이야기이다.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옛 전통가옥, 무계원이 현재는 “해설이 있는 국악공연 <풍류산방>”을 열고 있다는 이야기, 무계원의 전통 가옥은 1910년대 초에 지어진 대표적인 상업용 도시한옥, 오진암의 건축자재를 활용하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현재는 전통문화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이야기, 중인그룹에서 즐겨 부르던 점잖은 긴소리를 아직도‘잡가’라고 부르는 것은 시정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까닭은 1910년~1920년대에 나온 여러 잡가집들을 보면 전 장르를 망라한 노래들이 잡거하고 있어서 책의 이름도 잡가로 명명한 것인데, 긴 호흡으로 느짓하게 불러나가는 서울 경기지방의 긴소리를 잡가로 호칭하고 있는 것은 의미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잡가란 뭔가 섞여 있어서 순수하지 않은, 또는 잡스런 의미를 담고 있기에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겠다.
장기타령에서는 적벽가 끝 부분에 나오는 적벽대전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아 재미를 더했으며 <아리랑>을 비롯한 민요도 들려주었는데, 특히 감동적인 선물은 정선 아리랑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최영숙의 공력이 그대로 녹아있는 멋진 표현으로 모두가 그녀의 소리에 압도당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최영숙은 목소리도 곱고 아름답지만, 더 예쁘고 더 아름다운 것은 경기소리를 아끼고, 선생을 지극정성으로 받들며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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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김미나 명창의 판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한다.
잡가(雜歌)와 <장기타령>, 그리고 아리랑을 비롯한 정선아리랑, 한오백년, 강원도 아리랑 등 비교적 우리에게 친숙한 민요들을 불러준 최영숙의 소리를 듣고 그 분위기에 잔뜩 취해 있던 청중들 앞에 두 번째로 소개된 출연자는 판소리 춘향가를 불러준 김미나 명창이었다. 현재 그는 국립창극단에 소속되어 있으며 이미 오래전에 《임방울 국악경연》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실력파 소리꾼이다.
대통령상이 흔해 져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소리꾼 중에는 대통령상을 수상을 밝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 사실만을 보는 일반인들은 누구나 웬만큼 하면 대개 받는 상인가 생각할 정도로 대단치 않게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 지방자치제 이후, 장관상이나 총리상을 걸고 하던 대회가 마치 지역의 기관장이나 국회의원들의 역량을 평가하는 것처럼 여겨져 대통령상으로 격상된 대회도 하나 둘이 아니다. 그래서 대통령상의 권위가 옛날만큼 못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같은 대통령상이라고 해도 임방울 대회에서 받았다고 하면 그만한 노력의 대가를 인정해 주고 있는 편이다. 이것은 단적으로 그 대회의 권위를 객관적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는 평가이기도 한 것이다. 김미나 명창은 임방울대회에서 당당하게 인정을 받은 소리이다. 그는 소리뿐 아니라 실기와 함께 이론적인 공부도 열심히 해서 음악학 박사학위를 받은 명창으로 유명하다.
그는 판소리의 고장 남원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는 소리에 소질이 있는 딸을 남원의 명창 강도근에게 보내 <흥보가>를 배우도록 해 주었다. 그 후, 소리에 맛을 들인 김미나는 이어 전주의 명창 이일주를 찾아가 <심청가>와 <춘향가>를 배우게 된다.
그이 나이 20살 전후에는 심청가의 완창무대를 가진바가 있고, 이제 본격적으로 소리공부를 위해 서울의 안숙선 명창에게 <적벽가>와 <춘향가>를 공부하였고, 김수연 명창에게는 <수궁가>를 착실하게 익혔던 것이다.
그러니까 흥보가를 시작으로 심청가와 춘향가, 적벽가, 수궁가 등 현재까지 전해오는 판소리 5바탕을 모두 부를 수 있는 저력의 명창이 된 것이다. 5바탕의 눈대목이 아니라 전판을 다 머릿속에 넣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다 합치면 총 20시간은 족히 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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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시간 이상을 부를 수 있는 점으로도 그의 공력은 인정을 받고도 남을 일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점은 그의 소리가 정감이 넘쳐흐르고, 진솔함이 가슴에 와 닿는 흔치 않은 소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어려서부터 배워 온 대 명창들의 알심과 소리길이 김미나에게 그대로 배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얼마 전,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저는 판소리 고장, 남원에서 태어나 근 40여 년을 한 길 소리와 함께 살아 왔어요. 그러나 이제 조금 소리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기 시작하였을 뿐이네요, 소리를 제대로 느끼고 소화하기엔 아직도 멀고 험한 길임을 잘 알고 있지요.”
춘향가 중에 “춘향모 술잔 받어들고 도련님도 이삼배 잡수시었구나. ‘알심’있는 춘향모가 향단이 다리고 건넌방으로 건너가고, 춘향과 도련님이 단둘이 않았으니”하는 대목에 ‘알심’이라는 재미있는 말이 나온다. 알심은 ‘속마음’이고 곧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리키는 말이겠다. 김미나야말로 상대를 진정으로 위하고 주위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따듯한 속마음을 지닌, 알심 있는 소리꾼이다. 비단 마음 씀씀이뿐만이 아니다.
경우가 분명하고 선·후배나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가 지극히 겸손하며 인간적이다. 이러한 알심을 지니고 있는 그의 판소리 공력도 결코 녹록치 않기에 머지않아 그의 소리는 국내 정상급 소리로 인정될 것이 분명하다.
이 날도 김미나 명창은 무계원을 찾은 마니아들 앞에서 단가 한 대목과 춘향의 이별 대목을 불렀다. 단가란 글자 그대로 짧은 노래이다. 특히 판소리와 같이 오랜 시간을 부르기에 앞서 목을 점검하는 노래이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불러준“춘향과 이도령의 이별대목”은 객석을 숙연하게 만들기도 하고 애잔하게 만들기도 하면서 감동을 주었다. 역시 마이크를 쓰지 않기 때문에 발음이 깨끗하게 전달되어 판소리의 맛을 그대로 살려냈다. 소리공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주어 또 하나의 남원출신, 판소리 명창으로 ‘김미나’라는 이름을 굵게 각인시켜 주었던 것이다. 풍류산방의 음악회는 30명으로 제한을 두는 점이 아쉽다. 기회가 되면 감상자들의 재청으로 다시 한 번 그를 초청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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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한 범 /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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