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지방 벼슬아치, 벼슬이 올라가려면 “단골리”를 통해라

튼씩이 2015. 12. 25. 16:42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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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8(2015). 12. 24.



청백리였던 조선 중기 문인 설봉(雪峯) 강백년(姜栢年,1603~1681년)은 1628년(인조 6년) 1월에 종4품 “조봉대부로 승품한다.”는 교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교지 뒷면에 보면 “이리(吏吏) 심기(沈麒)”라는 글자가 작게 적혀 있지요. 여기서 '이리'는 조선시대 인사를 담당했던 ‘이조’의 맨 아랫자리에서 실무를 보는 아전을 말하고 '심기'는 그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임금이 내리는 문서에 감히 말단 서리의 이름이 낙서처럼 쓰인 까닭이 무엇일까요?

조선시대의 벼슬아치들이 윗자리로 오르기란 매우 어려웠습니다. 평생 미관말직에 머무르다 생을 마치는 경우도 흔한 일이었지요. 그래서 벼슬이 오르려면 능력도 중요하지만 로비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인맥도 없는 지방의 미관말직 벼슬아치들은 로비하기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요. 그래서 이들은 이조나 병조의 서리들에게 줄을 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정해진 녹봉이 없었던 서리들은 이들에게서 수수료를 챙기는 대신 인사와 관련된 각종 자문은 물론 벼슬자리 청탁까지 받았는데, 이때 교지가 내려지면 뒷면에 자기 이름을 써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지요.

이들은 소속 기관별로 '이리' '병정리' 등으로 불렸는데 친한 사이였을 땐 '단골(丹骨)' '단골리'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1893년(고종 30년)에 내린 황우영 통훈대부(정3품) 교지에는 '단골 김중섭'이라고 쓰기도 했지요. 그런 단골리들은 심지어 녹봉도 대신 받기도 했는데 이것이 바로 뇌물인 셈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사가 적체되면 금품이 오가는 로비가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옛 얼레빗 (2011-12-21)


2220. 제주 해녀들이 가슴 속 한도 꺼내 말리던 “불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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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하던 옷 벗어 말리며 / 가슴 속 저 밑바닥 속 / 한 줌 한도 꺼내 말린다 / 비바람 치는 날 / 바닷속 헤매며 따 올리던 꿈 / 누구에게 주려 했는가 / 오늘도 불턱에 지핀 장작불에 / 무명 옷 말리며 / 바람 잦길 비는 해녀 순이"
- 김승기 ‘불턱’-

“여기서 불 초멍 속말도 허구, 세상 돌아가는 말도 듣고 했쥬.” 제주 해녀는 붙턱에 대해서 그렇게 말합니다. 불턱에서 불을 쬐면서 속에 있는 말들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말들도 얻어듣곤 했다는 것이지요. 제주 바닷가에 가면 불턱이라 하여 해녀들이 물질 하다가 물 밖에 나와 옷을 갈아입거나 쉬면서 공동체 의식을 다지던 곳이 있습니다. 보통은 제주에 많은 돌로 담을 쌓아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했지요.

예전 해녀들은 물소중이 또는 ‘잠수옷ㆍ잠녀옷ㆍ물옷’ 따위로 불렸던 옷을 입고 바다 속에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입고 벗기가 편하게 만들었던 이 물소중이는 자주 물 밖으로 나와 불을 쬐어 체온을 높여야 했지요. 그런 까닭으로 제주에는 바닷가 마을마다 여러 개의 불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고무잠수옷을 입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탈의장이 생겨서 불턱은 이제 해녀들이 찾지 않는 옛시대의 유적으로만 존재합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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