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엄동설한, 희망으로 “구구소한도”를 그립니다

튼씩이 2015. 12. 28. 08:07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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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8(2015). 12. 25.



엊그제 동지를 지내고 우리는 엄동설한을 견뎌야 합니다. 지금이야 난방도 잘되는 집과 오리털 점퍼도 있지만, 예전엔 문풍지가 사납게 우는 방에서 오들오들 떠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엄동설한을 견뎠을까요? 먼저 동지부터 입춘까지 물리적인 난방이 어려운 대신 한 가닥 꿈을 꾸면서 구구소한도를 그려나갔습니다.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에서 구구(九九)란 9×9=81, 곧 여든한 개의 매화 꽃송이로 소한(消寒) 곧 추위를 잊어서 삭여 내는 걸 말하지요. 동짓날 창호지에 하얀 매화꽃 81송이를 그려 벽에 미리 붙여 놓고 매일 하루에 한 송이씩 차례대로 빨갛게 색칠을 해나갔습니다. 빨갛게 칠해가는 방법을 보면 흐린 날은 매화 위쪽을, 맑은 날은 아래쪽을, 바람 부는 날에는 왼쪽을, 비가 오는 날에는 오른쪽을, 눈이 오는 날에는 한가운데를 칠했지요. 하루 한 송이씩 하얀 매화 그림 위에 색을 칠할 때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꽃송이를 완성시킨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아홉 번째 아홉 날이 지나면 농사짓는 소가 밭을 갈기 시작한다네.”라고 하여 홍매화 81 송이를 그려가며 꿈을 꾸면 입춘이 되고 봄이 온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삶의 고통 속에서 괴로워할지도 모르는 이 시대의 우리들, 조선시대 선비들의 로맨틱한 여유이며 기다림의 미학이었던 “구구소한도”를 마음속에 그려나간다면 그 어떤 난방기보다 품격 있는 겨울나기가 되지 않을까요?

옛 얼레빗 (2011-12-28)


2224. 주인공이 아니면서 놀이를 빛나게 하는 "초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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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별신굿탈놀이”에 보면 <초랭이>가 등장합니다. 초랭이는 여기서 양반의 하인으로 등장하는 인물인데 초랑이ㆍ초란이ㆍ초라니라고도 합니다. 이 초랭이는 무색 바지저고리에 쾌자((快子, 옛 군복의 하나로 등 가운데 부분을 길게 째고 소매는 없는 옷)를 입고 머리에는 벙거지를 씁니다.

초랭이탈의 광대뼈는 입매를 감싸면서 왼편은 위쪽이 툭 불거져 있고 오른편은 아래쪽이 곡선의 볼주름을 이룹니다. 그리하여 왼쪽 입매는 화난 듯 보이지만 오른쪽의 것은 웃는 모습이 되어 기가 막힌 불균형입니다. 또 앞으로 툭 불거져 나온 이마, 올챙이 눈에 동그랗게 파여 있는 동공(瞳孔-눈동자), 끝이 뭉툭하게 잘린 주먹코, 일그러진 언챙이 입을 비롯하여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온갖 못생긴 것을 한데 모아 놓은 듯한 얼굴이지요.

그렇지만 놀이에서는 여인과 놀아나는 중을 비난하고, 양반과 선비를 우스갯거리로 만듭니다. 또 초랭이는 이런 못생긴 상과 함께 험악한 말씨로 양반을 공격합니다. 그러다가 양반의 호령이 떨어지면 얼른 웃는 입매를 짓습니다. 이 초랭이는 “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놀이를 빛나게 하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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