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김홍도와 김득신 등이 그린 ‘고산구곡시화도’

튼씩이 2016. 1. 1. 09:19

날마다 쓰는 한국문화 편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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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8(2015). 12. 29.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는 1578년(선조 11) 율곡 이이가 황해도 해주의 석담에 은거할 때 수양산에 들어가 풍경을 노래한 것입니다. 서곡(序曲) 1수를 비롯하여 제1곡 관암, 제2곡 화암, 제3곡 취병, 제4곡 송애, 제5곡 은병, 제6곡 조협, 제7곡 풍암, 제8곡 금탄, 제9곡 문산 따위로 나누어 각각의 경치와 흥을 읊은 노래지요. 이 노래는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서 지었다고 하나 시상과 미의식면에서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율곡의 고산구곡가는 조선 후기에 여러 화가들이 그림과 시를 적어 12폭 병풍으로 만들었는데 국보 제237호인 “고산구곡시화도(高山九曲詩畵圖)”가 그것입니다. 그림은 김홍도와 김득신 등의 도화서 화원과 문인화가들이 맡았는데 이들은 율곡이 은거하던 황해도 고산의 아홉 경치를 가보지 않고 1803년 7월과 9월에 걸쳐 그려 모아 표구한 것이지요. 병풍에는 그림마다 율곡이 동자를 데리고 노니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각 경관들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그려져 있는 게 특징입니다.

“고산구곡시화도” 병풍은 세로 1.38m, 가로 5.62m로 바탕에 수묵과 엷은 채색을 하였으며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우리나라 산천을 소재로 그린 산수화)와 남종화풍(南宗畵, 북종화에 대립되는 개념의 산수화 양식으로 부드러운 느낌 강조)을 기반으로 형성된 작가들의 특색과 기량이 잘 나타나있어, 그들의 개성과 역량을 견줄 수 있는 귀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각 표구의 맨 위에는 유한지가 쓴 표제가 적혀있으며 그 아래에는 율곡의 고산구곡가와 송시열의 한역시들이 적혀 있고 여백에는 각 폭마다 김가순이 쓴 글도 들어 있어 하나의 병풍으로 수많은 예술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귀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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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속풀이 243 >

엄청난 내공으로 청중을 압도한 정경옥의 가야금병창



지난주에는 “무계원을 감동시킨 알심의 소리꾼, 김미나”의 판소리를 소개하였다. 그는 현재 <국립창극단> 소속으로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며 대내외 공연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는 점, 그의 소리는 오래전에 “임방울 국악경연”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점, 그 위에 판소리이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음악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구파 명창인 점, 남원태생으로 초등학교 3학년부터 강도근 명창에게 <흥보가>를 배웠고, 그 후에는 전주의 이일주 명창에게 <심청가>와 <춘향가>, 서울에 와서는 안숙선 명창에게 <적벽가>와 <춘향가>, 김수연 명창에게 <수궁가>를 익혀 현전 판소리 5바탕을 모두 부를 수 있는 저력의 명창이란 점을 얘기했다.

또 그의 소리는 정감이 넘쳐흐르고, 진솔함이 가슴에 와 닿는 흔치 않은 소리란 점, 알심이란 곧‘남을 배려하는 마음’인데 김미나는 상대를 진정으로 위하고 주위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따뜻한 속마음을 지닌, 알심 있는 소리꾼이란 점, 무계원에서는 단가 한 대목과 춘향의 이별 대목을 불러 주어 좌중을 숙연하게 만들고 애잔하게 만들기도 하면서 감동을 주었고, 역시 마이크를 쓰지 않아 발음이 깨끗하며 공감이 컸다는 이야기와 함께 또 한사람의 남원출신, 판소리 명창 ‘김미나’라는 이름을 굵게 각인시킨 무대였다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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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속풀이에서는 지난 12월 19일, 무계원 풍류산방에 초청되었던 <가야금 병창>의 정경옥 명창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한다.

정경옥은 오랜 동안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 병창을 담당해 오다가 작년에 정년을 하고 지금은 개인연구소를 운영하며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는 이 바닥의 큰 소리꾼이다. 그의 오빠가 아쟁산조의 명인 정경호이고, 그의 언니가 바로 경상북도 판소리의 예능보유자 정순임이다. 이들 3남매가 오늘의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가르친 스승이 다름 아닌 어머니 장월중선(張月中仙) 선생이다.

가야금 병창(竝唱)이란 창자 스스로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동시에 노래를 부르는 장르이다. 입으로 부는 관악기 전공자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가야금과 거문고와 같은 현악기는 가능한 분야가 병창이다. 그러나 거문고 병창은 더러 부르는 사람도 있었으나 현재는 거의 단절상태이고, 가야금 병창만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병창이란 마치 대중음악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본인이 가야금을 반주악기로 타면서 스스로 노래를 부르는 형태이다. 현악기 이외에 꽹과리를 치면서 부르는 불교의 ‘화청’이나 ‘회심곡’, 또는 ‘비나리’등도 있고, 장고를 치면서 부르는 민요 등도 있으나 이러한 류의 연주형태를 모두 병창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가야금 병창은 가야금도, 그리고 소리도 잘 안 되는 사람들이 하는 분야라고 평가절하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와 대조적으로 두 분야가 다 완숙한 경지에 들어야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야금병창이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소리를 잘 한다고 해도, 가야금이 받쳐주지 못하면 안정감이 떨어지게 마련이고, 또는 가야금은 능숙해도 목이 따라주지 못하면 역시 병창이 싱거워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가야금의 역할은 단순히 노래의 가락만을 따라주는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음정의 안정감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면서 때로는 잔가락을 삽입하여 화려함과 탄력을 주기도 한다. 또한 소리가 일음(一音)으로 한 장단 이상 길게 뻗어나갈 때,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가락을 끼워 넣기도 하고, 소리의 뒷부분을 가야금의 반주가락으로 채워주면서 마치, 장단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지난여름, 중국의 연변대학과 교류회를 가질 때, 정경옥의 가야금 병창을 감상한 중국인들이나 동포 청중들이 환호하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그의 병창은 우선 발음이 분명해서 알기 듣기 쉽고, 힘이 실려 있는 소리로 상하청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면서 깊은 맛을 내주고 있기에 시원해서 좋다. 그 위에 박진감을 살려가며 극적으로 표현하는 소리들은 오랜 공력을 충분히 알게 하는 것이다. 가야금 연주도 일품이다. 동포 음악인들이 그토록 환호하는 것도 음악적 공감이 이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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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감동은 이 날, 무계원에서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자리를 함께 한 모든 청중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벌써 단가를 부르면서 청중은 숨을 죽이며 듣기 시작했고, 작은 체구에서 뿜어 나오는 강렬함과 부드러움의 조화, 그리고 꺽고 흔들고, 밀고 흘리는 다양한 창법, 무엇보다도 버티고 앉아있는 당당함이 청중을 압도하고도 남은 것이다.

확성 장치를 배제하고 자연 공간속에서 듣게 된 맑고 깨끗한 창과 가야금 연주에서 그의 숨은 공력을 알게 된 청중들은 재청을 연발하였다. 그의 공력에 우선해서 그의 어머니 장월중선으로부터 물려받은 음악성, 아니 그 이전의 장판개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목구성이나 음악적 유전자가 없었다면 이러한 소리가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에서는 떠나지 않았다.

정경옥의 어머니는 “달 가운데 선녀”란 이름의 소유자, 장월중선이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큰 아버지인 장판개에게 “적벽갚를 비롯하여 <수궁가>며 <춘향가> 등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고모인 장수향에게는 가야금 풍류, 오태석에게 가야금병창을 배웠다. 그 외에 여러 종목들을 당대 최고의 명인 명창들로부터 배웠다고 하는데, 그의 어머니가 남기고 떠난 종목들은 거문고 산조를 비롯하여, 가야금 산조, 아쟁산조, 범패, 살풀이나 승무, 작곡 등 다양한 장르이다. 남들은 한 종목을 학습해도 명인 명창의 반열에 오르기 어려운 일인데, 그의 어머니 장월중선은 각 종목에 두루 통달한 만능 국악인이었던 것이다.

그 뿐인가! 장월중선의 큰 아버지 장판개(본명-학순)는 고종 때의 유명한 판소리 명창이었다. 그러므로 얼마 전 국가가 판소리 3대 명가로 이 집안을 지정한 것도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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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한 범 / 단국대 명예교수, 한국전통음악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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