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1월 25일 - 추위를 녹이는 훈훈한 이야기 둘, 효자 김과

튼씩이 2018. 1. 25. 09:07

서울 생활은 어버이 뜻이 아니요


강호에 있자면 왕은을 저버리네

문안은 자주 꿈속에 드렸거니와

난을 들으니 다시 넋이 빠지누나 …

자당께선 참으로 탈이 없으신지

천지간에 두 줄기 눈물만 흐르네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시입니다. 예전에 관리들은 이처럼 짬짬이 고향집 부모님을 그리며 시를 짓고 또 시간이 나면 찾아뵙길 공손히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또 있습니다. 《태조실록》 14권(1398)에 보면 제주 판관(濟州判官) 김과(金科)라는 사람은 늙으신 어머니 봉양을 위해 자신의 판관자리를 취소해달라고 임금께 상소를 올립니다.


“임소(任所)로 가고자 하였으나, 신이 염려되는 것은 신의 어머니가 지금 이미 75살이온데, 늙고 쇠약하여 병석(病席)에 누워 조석으로 생명을 보전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신이 이미 3년 동안이나 분묘(墳墓)를 지키고 있어 오랫동안 봉양을 못하였사온데, 지금 또 어머니를 떠나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면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물어 보살펴드리지 못하고 안부 묻는 편지도 드물 것이니, 어찌 다만 신이 어머니를 사모하는 것뿐이겠습니까? 또한 어머니도 신을 생각하여 더욱 병이 심할까 염려되오니, 이렇게 되면 신의 마음이 어찌 맡은 직책에 편안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서 3년 동안 분묘 했다는 것은 아버지의 3년상을 말합니다. 3년상을 마쳐 이제 영광스러운 판관자리를 제수받은 김과는 그러나 이번에는 늙으신 어머니를 두고 관직에 나갈 수가 없음을 임금께 정중히 상소문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합니다. 자신이 어머니 생각하는 것보다 늙으신 어머니께서 아들이 임지로 가면서 자신 때문에 노심초사할 것을 앞서 생각하여 차마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관직을 위해 부모의 재산을 팔아먹고 심지어는 부모를 살해하는 희대의 패륜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가슴 찡한 효자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