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1월 24일 - 추위를 녹이는 훈훈한 이야기 하나, 물린 수라상 물려줍니다

튼씩이 2018. 1. 24. 21:02

임금과 왕비의 아침저녁 수라를 짓는 곳은 소주방입니다. 이 소주방에서 나오는 수라상에는 임금의 수저 이외에 상아 젓가락, 곧 공저 한 벌과 조그만 그릇이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 임금이 수라를 들기 직전 중간 지위쯤 되는 상궁이 이 상아 젓가락으로 접시에 모든 음식을 고루 담습니다. 그런 다음 큰방상궁이 먼저 접시에 담긴 음식 맛을 보는데 이것을 ‘기미(氣味)를 본다’고 합니다.




이 때 수라와 탕만은 기미를 보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여기서 기미를 보는 것은 맛을 보기보다 독(毒)이 들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는데 나중엔 의례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또 기미를 보는 것은 녹용이나 인삼과 같은 귀한 탕제를 올릴 때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상궁들에게는 인기 있는 직책이었다고 합니다. 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생각시들은 꿈도 못 꾸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임금이 수라를 들고 남은 음식은 어떻게 했을까요? 수라상도 푸짐하게 차리는 것 예사여서 음식이 남을 수밖에 없는데 이는 ‘물림상’이라 하여 왕실 사람이나 재상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선조실록》에도 남은 수라를 사위인 부마들을 불러 물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임금이 먹던 수라상이 궁궐 밖으로 나오기도 한 덕분에 조선 음식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하지요. 또 이 물림상은 관가 잔치에서도 있었던 것인데 이렇게 아랫사람에게 물려줌으로써 더불어 사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도 한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