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런 달이 떠오르는 정월대보름의 먹을거리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약밥입니다. 약밥은 찹쌀을 밤, 대추, 꿀, 기름, 간장들을 섞어서 함께 찐 후 잣을 섞어 먹으면 고소한 맛을 더합니다. 요즈음은 전기압력밥솥에다 밥하듯이 해도 맛있게 만들어 먹을 수 있지요. 약밥은 지방에 따라 오곡밥, 잡곡밥, 찰밥, 농사밥으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정월대보름에 해먹는 약밥의 유래는 《삼국유사》에 전해옵니다. 신라 제21대 비처왕(혹은 소지왕) 시절,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나가자 쥐가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보시오”라고 말합니다. 해서 신하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이때 돼지 두 마리가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어 이를 구경하다가 그만 까마귀 간 곳을 잃었는데 그때 한 늙은이가 연못 가운데서 나와 글을 줍니다. 읽어보니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지요. 고민 끝에 열어보니 ‘궁중의 거문고 갑을 쏘라〔射琴匣〕’고 적혀 있었습니다. 쏘고 보니 갑 안에는 웬 중과 자신의 후궁이 들어 있는 게 아닙니까. 내전에서 분향 수도하던 중이 후궁과 은밀하게 간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은 이들을 처형하고 이러한 사실을 알려준 까마귀를 위해 대보름을 까마귀날((烏忌日)로 삼아 찰밥으로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담헌서(湛軒書》에도 약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요. “초하룻날에는 과일 두 그릇이고, 보름날에는 과일 한 그릇이다. 설날에는 탕(湯)과 떡이 각 한 그릇이고, 상원에는 약밥이 각 한 그릇이고, 유두(流頭)에는 수단(水團)이 각 한 그릇이고, 백종(百種)에는 상화(霜花)가 각 한 그릇이고, 3월 3일에는 화전(花煎)이 각 한 그릇이고, 9월 9일에는 국전(菊煎)이 각 한 그릇이고, 동지(冬至)에는 두죽(豆粥)이 각 한 그릇이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민간에서는 이날 세 집 이상 성(姓)이 다른 사람 집 밥을 먹어야 그해의 운이 좋다고 했으며 평상시에는 하루 세 번 먹는 밥을 이날은 아홉 번 먹어야 좋다고 믿었습니다. 또 이날 아침 아이들이 체, 얼맹이, 조리 따위를 들고 보름밥을 얻으러 다니는데 이를 조리밥(더윗밥)이라고 하며 이 밥을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믿었지요. 이처럼 대보름엔 약밥, 찰밥, 오곡밥, 조리밥과 관련한 이야기가 풍성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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