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이 부럼 깨기 행사입니다. 대보름이 다가오면 온 나라에 호두·잣·밤·땅콩·은행 등 부럼용 견과류가 쏟아져 나오지요. 이날 아침 일찍 일어나 부럼을 나이 수대로 깨물면서 “1년 내내 무사태평하고 부스럼(종기)이 나지 않게 해주소서” 하고 빌면 1년 내내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임하필기》 제34권 <정월 대보름날의 잡사(雜事)>에 보면 “더위팔기〔賣暑〕라는 것이 있다. 당(唐)·송(宋) 사람들은 어리석음을 팔았으니, 이것은 더위팔기와 같은 것이다. 또 다리밟이〔踏橋〕라는 것이 있는데, 고려의 풍속에서 다리 병을 물리치는 놀이로 했던 것이다. 속담에, ‘하룻밤에 열두 다리를 밟으면 열두 달의 재액을 없앨 수 있다’ 했는데, 임진왜란 후에 이 풍속이 점점 사라졌다. 보름달의 두껍고 엷은 상태를 가지고 그해의 풍흉을 점쳤는데,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곡식 이삭 늘어놓기, 부럼 깨물기, 줄다리기의 놀이는 모두 신라와 고려의 옛 풍속이자 명절놀이의 한 행사다”라는 것으로 보아 부럼 깨기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강점기에도 우리의 부럼 깨기 풍속은 이어져 《동아일보》 1935년 2월 17일자에 보면 싸전(쌀 파는 곳) 앞에 호두랑 땅콩을 수북하게 쌓아두고 있는 흑백 사진이 사회면 머리기사로 올라와 있는 광경이 펼쳐집니다. 지금은 호두, 땅콩 등을 연중 살 수 있어 관심도 적지만 먹을 것이 적었던 당시 부럼 깨기는 상대적으로, 특히 어린아이들이 기다리는 연중행사였을 것입니다. 실제로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았던 시절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곧잘 부스럼이 나고 버짐이 피었는데 호두나 땅콩 같은 영양가 높은 음식을 미리 먹여 피부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부럼 깨기라고 말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또 단단한 것을 깨물면서 이가 튼튼해지고, 이 덕분에 머리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하지요. 이번 보름에는 부럼을 듬뿍 사서 식구들과 부럼 깨기를 해보면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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