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하루하루가 잔치로세(김영조)

2월 14일 - 수천 년 겨레와 함께해온 꿀맛 같은 시루입니다

튼씩이 2018. 2. 19. 16:55



어렸을 때 솥 위에 시루를 얹어놓고 떡을 찌던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시루는 떡을 만들 때 쓰는 한국 고유의 찜기인데 떡시루 말고도 집에서 콩나물을 길러 먹던 콩나물시루도 있지요.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시루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나진 초도 조개무지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상고시대의 시루 모양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데 바닥 구멍은 꽃잎 모양으로 뚫려 있고 쇠뿔 모양의 손잡이가 달렸습니다.


1935년 3월 《개벽》 신간 4호에는 김유정이 쓴 소설 <금따는 콩밧>이 실려 있는데 떡을 하는 부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부는 떡을 하러 나왓다. 남편은 절구에 쿵쿵 빠앗다. 그러나 체가 없다. 동내로 돌아다니며 빌려 오느라고 안해는 다리에 불풍이 낫다. 떡을 찌다가 얼이 빠저서 멍허니 앉엇는 남편이 밉쌀스럽다. … 닭이 두 홰를 치고 나서야 떡은 되엇다. 안해는 시루를 이고 남편은 겨드랑에 자리때기를 꼇다. 그리고 캄캄한 산길을 올라간다.”


그들이 시루떡을 해서 올라가는 곳은 산 중턱의 콩밭으로 그들은 콩밭에 시루를 놓고 산신께 빕니다. 산신 제사 때도 한 시루의 떡이 쓰이고, 외동딸 혼례식 때 함 들어오는 날에도 시루떡이 쓰입니다. 가을 추수의 풍년제 때도, 몇 달이고 비가 안 내려 가물 때 지내는 기우제 때도 시루떡은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 겨레의 중요한 행사 때마다 함께 해온 시루지요.


시루는 바닥에 있는 구멍을 통하여 뜨거운 김이 올라와 시루 안의 음식이 쪄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시루바닥과 둘레가 꼭 맞는 솥을 골라 물을 붓고 시루를 앉힙니다. 이때 시루와 솥이 닿는 부분에서 김이 새는 것을 막으려고 밀가루나 멥쌀가루를 반죽하여 지름 1cm 정도로 시룻번을 바릅니다. 군것질거리가 별로 없던 시대, 이 시룻번도 꿀맛으로 알고 먹었습니다. 제사떡을 맞춰 먹는 시대에 시루는 구경조차 하기 어렵지만 시루는 수천 년 겨레와 함께해온 정든 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