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씨 내 좋은 아이디어가 있소
광복 두 시간 전 총독부 학무국
동인이 찾아간 사무실 안 침묵이 흐른다
아 아베 씨 좀 보소
그걸 만듭시다
시국에 공헌할 작가 단을 꾸리자고요
아베
머리 절레절레 흔든 뜻은
이런 쓰레기 같은 조선놈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아부하기에 바쁜 조선놈
어서 꺼졌으면 싶었겠지
그리고
두 시간 뒤 조선은 빛을 찾았다
이윤옥 시인이 쓴 친일문학인 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에 나오는 시 ‘광복 두 시간 전까지 친일하던 <김동인>’의 일부입니다. <배따라기>,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따위로 알려진 김동인(창씨명 곤도후미히토, 1900~1951)은 평양갑부의 아들로, 호사스러운 생활을 했지요. 그가 평양에서 서울을 드나들며 명월관에서 기생 수십 명과 놀아난 이야기는 월탄 박종화의 <오만한 천재 김동인의 풍류>에도 나옵니다.
김동인이 평양에서 서울을 드나들던 시대는 나라를 빼앗기고 그 울분을 삭이지 못해 일제의 총칼 앞에 맨손으로, 만세로써 저항하던 시대요, 유관순처럼 나이 어린 소녀들조차 분연히 일어서던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에 호화로운 사치생활을 누리던 김동인은 192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 차츰 가세가 기울어 급기야는 평양에서 가장 컸던 400평 규모의 집을 팔게 되지요. 이러한 생활 변화는 우울증을 가져왔고 그는 수면제, 최면제 같은 약을 지나치개 복용함으로써 나중에는 마약에까지 손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1939년에는 성전종군작가로 황군위문을 자청한 이래 조선문인보 국회 간사로 활동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김동인은 친일의 길로 들어섭니다. 1944년에는 <성암의 길> 같은 친일작품을 발표하지요.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브리태니커> 사전에는 전혀 언급이 없을 뿐 아니라 18줄에 이르는 설명은 그에 대한 찬양 일색이라고 시인 이윤옥 씨는 시집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김동인의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층은 넓겠지요. 3.1절만큼은 그가 한때 조국을 배반하고 친일의 길로 들어서서 써댄 글들을 읽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이 시집에는 이 밖에도 20명에 이르는 친일문학인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 겨레가 항일독립 정신을 기억하는 한, 친일 부역자들의 행적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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