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두 개가 한 벌을 이루는 쌍문갑, 검소한 선비의 미학

튼씩이 2016. 1. 17. 12:07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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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1. 15.



"선비의 품격이 담긴 간결함의 미학, 할아버지의 거처에서 칠기류의 화려한 가구는 찾아볼 길이 없었다. 오래된 경상과 쌍문갑은 오로지 사람이 문질러서 광택이 생긴 것일 뿐 모서리에 철 장식 한 조각 붙어 있지 않았다. 방 귀퉁이에 놓인 사방탁자도 문구 이상의 것은 없었다. 집 안에 청화백자가 화분처럼 흔하게 널렸건만 할아버지의 침소에는 한 점도 들여놓지 않았다. 저녁이면 낡은 감색 방석과 경상을 한쪽으로 치운 후 반침(半寢)을 열고 이부자리를 내렸다."

위 글은 심윤경 작가의 소설 <달의 제단> 가운데 나오는 내용입니다. 안방의 보료(안방이나 사랑방 등에 방치레로 항상 깔아두었던 요) 옆이나 창 밑에 두고 문서·편지·서류 따위의 개인적인 물건이나 일상용 기물들을 보관하는 가구가 바로 문갑(文匣)이지요. 문갑은 형태에 따라 책상을 겸한 책문갑(冊文匣)이 있으며, 장식공간이 많은 난문갑(亂文匣), 중국식 문갑을 말하는 당문갑(唐文匣)으로 나뉘기도 하고, 하나만 쓰는 외문갑과 쌍으로 쓰는 쌍문갑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쌍문갑(雙文匣)은 두 개가 한 벌을 이루는 것으로 낮고 작으며, 앞면이 모두 문짝으로 막혀서 “벙어리문갑”이라고도 하지요. 선비 방에 나있는 큰 창문을 열어젖히면 밝은 빛이 방 안 가득 차는데 이러한 쌍문갑은 그 창문 아래에 주로 놓였습니다. 먹감나무를 붙여 대칭으로 꾸몄는데 산수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다고도 말하지요. 보통 문갑은 사랑방에서 쓰이는데 선비취향에 맞게 검소하게 꾸며지지만 여성들은 안방에서 꾸밈이 화려한 문갑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 문갑도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습니다.

옛 얼레빗 (2012-01-16)


2235. 새해 처음 서는 장에서는 키를 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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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탈곡이 완전히 기계화되기 전까지 농가에선 없어서 안 되는 도구였습니다. 곡물을 털어내는 탈곡 과정에서 곡물과 함께 겉껍질, 흙, 돌멩이, 검부러기들이 섞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키로 곡물을 까불러서 이물질을 없앴지요. 키는 지방에 따라서 ‘칭이’, ‘챙이’, ‘푸는체’로도 부르는데 앞은 넓고 편평하고 뒤는 좁고 우굿하게 고리버들이나 대쪽 같은 것으로 결어 만들지요.

"키" 하면 50대 이상 사람들은 오줌싼 뒤 키를 뒤집어쓰고 이웃집에 소금 얻으러 가던 물건쯤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키를 쓰고 간 아이에게 이웃 아주머니는 소금을 냅다 뿌려댑니다. 그리곤 “다시는 오줌을 싸지 마라.”고 소리지르는데 그렇게 놀래키면 오줌을 싸지 않는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또 싸는 아이들이 있었던 것을 보면 이 방법이 그리 신통하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경상남도 지방에서는 정초에 처음 서는 장에 가서는 키를 사지 않는데 키는 까부는 연장이므로 복이 달아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모르고 사온 경우라도 집안어른이 부수어버립니다. 또 제주도에서는 섣달 그믐날 키점(箕占)을 칩니다. 부엌을 깨끗이 치우고 키를 엎어두었다가 새해 아침에 그 자리를 살펴봅니다. 쌀알이 떨어져 있으면 쌀이, 조가 떨어져 있으면 조가 그해에 풍년이 들 것이라고 했지요. 또, 윤달에 주부가 마루에서 마당 쪽으로 키질을 하면 집안이 망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대문에서 집을 지켜주는 문전신(門前神)을 키질로 내쫓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민속마을에나 가야 볼 수 있는 키질, 키질하던 어머니 모습이 그립습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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