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심하면 농촌보다 어촌이 더 문제다. 배를 띄울 수 없어 고기잡이를 할 수 없다. 자연히 어촌에서는 영등굿이 더 드세다. 돌과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하는 제주도 영등굿은 특히 유명하다. 잠녀(해녀)들이 해산물을 풍부하게 채취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며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영등굿을 했는데, 요즘은 영등이 내리는 날과 올라가는 날에만 굿을 한다. 물질하는 잠녀들이 영등할망을 정성껏 섬기는 굿이기도 하지만 잠녀들 스스로 신명풀이를 하는 한마당 잔치이기도 해서 영등굿을 잠녀굿이라도 한다.”
이는 안동대 민속학과 임재해 교수의 《영등할매 오시면 꽃샘바람 몰아친다》에 나오는 말입니다.
음력 2월 초하루는 ‘영등일’ 또는 ‘영등할매날’이라고 하는데 옛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영등할매가 이날 땅에 내려왔다가 스무날(20일)이면 다시 올라간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영등신앙은 주로 영남과 제주도 지방에 전승되었는데 영등할매가 거친 비바람을 몰고 온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날 바람이 불면 딸을 데리고 오는 것으로 치마가 나풀대어 더 예쁘게 보이려고 바람을 불게 하며, 흉년이 든다고 여겼습니다. 만일 비가 오면 며느리가 곱게 차려입은 명주치마를 얼룩지게 하려고 비를 뿌린다고 생각했으며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며느리를 데리고 오게 하려고 초하룻날 부엌에 떡을 쪄 정성껏 음식을 차려놓고 빌었습니다. 또 초하룻날 첫 새벽에 세 곳의 샘물을 떠서 장독대에 짚을 깔고 상위에 올려놓습니다.
따스한 봄기운 가운데 찾아오는 꽃샘바람은 산신이나 용신처럼 한 곳에 머무는 게 아니라 잠간 며칠 땅에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게 특이합니다. 영등내리기와 영등올리기 또는 영등맞이굿과 영등전송굿이 이를 말해주지요. 왔다가 다시 가는 그래서 길게 심술을 부리지 않는 것도 영등할매를 우리가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요소일지 모릅니다. 비바람을 과학적인 분석으로 밝혀내는 서양 천문학에 견주어, 꽃샘바람이라는 말을 만들고 이것이 영등할매의 조화라고 생각했던 우리 겨레의 따스한 마음은 언제 봐도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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