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내 샹해 날드려 닐오되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긔 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는고
자내 날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며
나는 자내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런고
매양 자내드려 내 닐오되
한데 누어 새기보소 …
이 한글 편지는 1998년 4월 경북 안동에서 택지조성을 위해 분묘이장을 하던 중 한 남자의 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관의 주인은 이응태(1555~1586), 부인(원이엄마)이 31살의 젊은 나이로 숨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로 적어 1586년 7월 16일 관속에 함께 넣어둔 것이지요. 또한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으로 만든 미투리가 들어 있었는데 ‘신어보지도 못하고’ 갔다는 글이 들어 있어 보는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지요.
이 글을 현대 글로 옮겨보면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란 뜻입니다.
여기서 아내 원이엄마는 남편을 ‘자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요즘 같으면 “당신”일 테지만 이 편지에서는 ‘자내’라고 부릅니다. 물론 당시에는 아내가 남편을 부르는 이름으로 ‘자내’ 말고도 ‘게셔, 나으리’ 따위도 쓰였습니다만 ‘나으리’에 비해 ‘자내’는 부부 사이에 대등한 호칭으로 여겨집니다. 조선사회는 중기까지 딸이 아들과 동등하게 제사를 지냈고, 유산도 같이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미뤄 볼 때 이들 부부의 ‘자내’ 호칭은 당시 부부간의 평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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